1936년에 김동리가 발표해 일제 치하 조선 문단의 주목을 끌었던 단편소설 『무녀도(巫女圖)』를 다시 찾아 읽었다. 1970년대에 김동리는 이 글을 장편으로 개작해서 내놓았고 『을화』라는 타이틀의 영화와 연극으로도 인기를 모았다. 무당 모화는 경주 인근 마을의 낡은 기와집에 아비가 다른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살면서 동네의 병자나 신들린 사람을 위해 굿을 해주는데 보통 때는 장터에 나가서 술을 먹고 돌아온다. 이야기는 아들 욱이와 딸 낭이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굿을 하다가 모화가 물에 잠겨 죽는 것으로 끝난다.
하필이면 왜 이 소설을 찾게 됐는지 스스로 설명해 보자면 요즘 부쩍 무속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많이 나도는 까닭이 아닌가 싶다. 6.25 전쟁 후 시골에 내려가 살 적에 곤궁한 중에도 무당 불러 굿하는 집들이 적지 않았다. 중병에 종합병원은 멀리 있는데 무당의 신통력에도 그만한 효험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점집들은 성업을 이어갔고 웬만한 어르신들의 지갑에는 무속인이나 절에서 받아온 부적 한두 장은 다 들어 있었다. 신촌 기찻길 아래로 이런저런 이름의 ‘철학관’들은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대학 근처의 타로 천막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해 오늘 디지털-모바일-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했다.
바야흐로 21세기에 어떤 제정신 가진 사람이 미신의 세계에 미련이나 향수를 남겨두고 있을까— 모두들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줄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천공이니 건진법사니 하는 직업명을 가진 무속인들이 전직 대통령 부부의 멘토역을 장기간 수행했고 ‘국군정보사령관’이라는 소름 끼치는 직책에 보임된 군장성의 실체가 한사람 점술가였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이 국가대사를 결행함에 있어 이런 인물들의 미신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당혹감을 안게 되었다.
작년 12.3 비상계엄 선포의 사실관계 진실규명과 법적 책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거니와 애국 시민들은 이런 걱정이 억측에 그치고 현실적인 결과에 이르지 못해 그나마 국격이 더 이상 상하지 않기를 진정 바라는 것이다.
무녀도 소설에서 모화는 어린 아들을 불도를 배우도록 절에 맡기는데 욱이는 홀로 절을 빠져나와 평양으로 올라가서 기독교 선교사를 만나게 되고 예수 믿는 청년이 되어 어머니에게로 돌아온다. 열병을 앓아 귀를 잘 못 듣는 낭이는 그림솜씨가 좋아 밤낮없이 엄마의 굿하는 그림들을 그리는데 사랑하는 오빠는 기도로 동생을 낫게 하겠다고 애를 쓴다. 모화는 예수귀신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이를 막으려고 욱이의 성경책을 몰래 가지고 나와 부뚜막에서 불을 붙인다. 이를 말리려 뛰쳐나온 아들에게 칼부림을 해 크게 다치게 하고는 예수귀신 물러가라 주문을 외우고 외운다.
얼마 안가서 욱이는 상처로 인해 세상을 뜨고 아들을 잃은 모화는 굿에만 정성을 쏟아 동네 대갓집 김씨부인의 혼령을 위로하는 큰 굿을 벌인다. 신내림을 받으려고 강물로 걸어 들어간 모화는 이내 돌아 나오지 못한다. 모화가 죽은 후 읍내에서 생선장수를 하는 낭이의 생부가 집으로 찾아와 음식을 해먹이고 끌고 온 나귀에 딸을 싣고 떠난다. 소설을 읽고 나니 어떤 사람들이 더욱 가엾게 느껴진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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