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침묵은 우리의 삶이 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요구한다.
역사 속 위대한 스승들조차도 이 ‘말과 삶의 괴리’라는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자크 루소는 그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에밀』에서 아버지가 자식을 직접 교육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정작 자신의 다섯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겼다. 타인에게는 엄격한 도덕을 요구하면서 자기 삶의 가장 근본적 의무를 외면한 것이다. 그의 이름에는 영원히 ‘말과 삶이 분리된 지식인’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삶과 사상의 괴리를 보여준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부정하고 신적인 존재로서의 초인을 선언했지만, 정작 자신은 1889년 이후 정신 착란에 빠져 마지막 생의 10년을 병원에서 광란의 삶을 보냈다. 인간의 신적인 강인함을 외쳤던 그였지만, 고독과 광기로 비참하고 무력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이들의 사례는 말이 아무리 숭고해도 삶이 위선으로 가득하다면 그 말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신앙은 화려한 말에 있지 않다. 말의 무게를 침묵 속에 실천하며 삶 속에 녹여내야 한다. 위선의 꼬리표를 달게 하는 웅변은 멈추어야 한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다. 이 시기는 요란한 선언과 행사가 아닌, 가장 작고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다. 예수님은 말로 세상을 현혹하는 대신, 삶 전체로 진리를 증명하신 분이다. 그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고,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셨다.
신앙이란 예수님처럼 겸손과 섬김을 통해 언행을 일치시키는 삶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말로 사람을 사로잡는 자가 아니라, 삶으로 그 말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대림절을 맞아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모든 신앙인들은 화려한 행사를 잠시 멈추고 ‘침묵의 실천’을 통해 예수님의 겸손한 오심을 준비해야 한다. 오직 진실된 삶의 태도로서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여! 대림절에 침묵을 배워라.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