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14세기 유럽 정신세계를 극명하게 대조하며,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모순을 해부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신곡’이 신의 절대적 질서와 교회의 권위를 옹호하며 하늘을 향했다면, ‘데카메론’은 흑사병이라는 절망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폭로하며 지상을 직시한다.
이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읽는 일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모순을 성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단테의 세계에서 교회는 구원의 유일한 통로다.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절대 기관으로서 도덕적 질서를 엄격히 세운다. 그러나 보카치오의 세계는 이를 비웃듯, 죽음이 일상이 된 현실을 정면으로 끌어안는다.
‘데카메론’ 속에서 젊은 여자 7명과 남자 3명은 하루에 10편씩 10일 동안 모두 100편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풀어놓는다. 첫째 날 첫 번째 이야기, ‘체파렐로의 거짓 고해성사’는 종교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폭로한다. 사악한 인간이 위선적인 고해성사로 성인으로 추대되는 아이러니는 단테가 세운 교회의 질서가 인간의 위선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형식이 진실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오늘의 교회는 단테적 이상과 보카치오적 현실이 기묘하게 결합된 모습이다. 거대한 조직과 교리적 경직성은 신앙을 ‘생명’이 아닌 ‘형식’으로 만들었고, 일부 성직자들은 체파렐로처럼 종교적 권위를 탐욕과 기만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열흘째 되는 날 9번째 이야기는 ‘토렐로와 살라디노’의 서사이다. 밀라노 기사 토렐로는 십자군에 참여했다가 불운으로 이슬람 세계에 포로로 잡힌다. 술탄 살라디노는 과거 자신이 여행자였을 때 토렐로에게 받았던 환대(款待)를 기억하고 그에게 극진한 대우를 베풀어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현대 교회에 이러한 사랑이나 원수에 대한 환대의 정신이 없다. 교회는 교파나 신앙적 색깔에 따라 상대를 향한 배타적 혐오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방인 고관대작 동방박사와 유대인 하층계급 목자들의 공동체였던 베들레헴의 마구간은 사라지고, 현대 교회는 배타적 성채가 되어버렸다.
교회가 낡은 권위를 내려놓고 체파렐로적 위선을 걷어낼 때 비로소 ‘신곡’이 보여주는 구원의 통로가 열리며, ‘데카메론’의 피난처처럼 세상 사람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탄의 정신은 바로 그 변혁의 시작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