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다시 가정과 사회 따뜻하게 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명
우리 사회에서 ‘효(孝)’라는 말은 여전히 무게감 있는 단어다. 부모를 공경(恭敬)하고 봉양(奉養)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라는 인식은 국어사전에도, 유교의 가르침에도, 그리고 성경의 계명 속에도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효는 오랫동안 가정을 지탱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핵심 가치로 존중받아 왔다.
성경은 효를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계명으로 제시한다. 십계명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약속이 수반된 첫 계명이다.
이는 부모 공경이 단지 인간관계의 윤리를 넘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은 곧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는 신앙의 실천이다.
유교 역시 효를 모든 도덕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효제야말로 인의 근본(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이라는 말처럼,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 이웃과 사회도 존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효는 인간관계의 기초이자 공동체를 지탱하는 긍정적 가치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효는 언제나 아름답게만 작동하지는 않았다. “며느리가 가장 싫어하는 남편은 효자”라는 말은 효가 왜곡될 때 발생하는 현실의 갈등을 드러낸다. 부모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배우자와 자녀의 삶이 희생되고, 효가 사랑이 아닌 복종과 강요의 언어로 사용되어 온 역사도 부인하기 어렵다. 농경사회에서 형성된 효는 가족 내부의 전적 부양 책임과 위계적 질서를 전제로 한 개념으로, 이를 현대 사회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경우 개인의 삶의 자율성과 가족 관계의 균형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예수님은 이러한 왜곡된 효를 분명히 경계하셨다.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종교적 명분을 앞세워 부모 봉양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책망하신다. 동시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부모 공경이 형식이나 말에 그쳐서는 안 되며, 실제적인 책임과 사랑으로 드러나야 함을 강조한다. 성경적 효는 위선도, 강요도 아닌 진실한 삶의 태도다.
문제는 효 그 자체가 아니라, 효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효가 어른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거나, 자녀의 인생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효는 미덕이 아니라 짐이 된다. 이때 효는 관계를 살리는 가치가 아니라 관계를 무너뜨리는 명분으로 전락한다.
오늘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것은 ‘진정한 효’의 의미다. 성경이 말하는 효는 무조건적인 순종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존중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자녀에게만 주어진 요구가 아니라, 부모 역시 자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라는 책임을 함께 담고 있다. 부모의 삶도 존중받아야 하고, 자녀의 삶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진정한 효의 실천은 거창하지 않다. 자주 안부를 묻고, 부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선택과 삶을 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동시에 부모 역시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할 때 효는 부담이 아니라 신뢰가 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 안에서의 공경이다.
효는 과거를 붙잡는 윤리가 아니라 오늘의 관계를 살리는 신앙의 실천이어야 한다. 복종(服從)의 효에서 존중(尊重)의 효로, 강요(强要)의 효에서 사랑의 효로 나아갈 때, 효는 다시 가정과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명이 될 것이다.
박용창 장로
<사회복지칼럼리스트, 제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