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존중받는 사회… 모든 세대가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사회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노인의 삶의 질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한 사회의 복지 수준과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노년기의 삶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존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80대 노인은 버스를 타는 것이 두렵다.
버스 계단은 여전히 높고,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쉴 수 있는 의자 하나 없다.
병원과 시장은 불과 몇 정거장 거리지만, 그에게 외출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이처럼 이동권은 노인의 일상과 사회참여를 결정짓는 출발점이다.
이동권, 문화생활, 재활치료시설, 휴양시설은 노인의 삶을 지탱하는 네 개의 축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노인의 삶은 급격히 위축되고, 고립과 건강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노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해 왔다. 일본은 저상버스 보급을 제도화하고, 역사와 공공시설에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설치를 의무화했다.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는 보행 신호 시간이 노인의 걸음 속도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노인은 혼자서도 외출하고, 이웃과 교류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이동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문화 향유로 확장된다.
독일과 프랑스의 공공 문화시설에서는 노인을 위한 무료 또는 할인 공연, 전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일상적으로 운영된다. 퇴직 이후에도 배움과 여가가 지속되며, 노인은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유지한다. 재활치료시설 또한 선진국 복지의 중요한 특징이다.
병원 치료 이후 곧바로 지역사회 재활센터로 연계되어 신체 기능 회복과 일상 복귀를 돕는다.
이는 의료비 절감뿐 아니라 노인의 자존감 회복에도 큰 역할을 한다.
휴양시설 역시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을 위한 공공복지 인프라로 운영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이동권은 지역과 소득 수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 농어촌 지역의 노인들은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병원 진료일에 하루 일정을 모두 비워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시설은 도심에 집중되어 있고, 프로그램 역시 노인의 특성과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재활치료시설은 병원 중심으로 편중되어 치료가 끝난 이후의 장기적 관리와 지역 연계가 부족하다. 노인 휴양시설 또한 민간 위주로 운영되어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에게는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킨다.
이동하지 못하면 문화도, 치료도, 휴식도 누릴 수 없다. 노후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이제 개선의 방향은 분명하다. 노인 이동권을 중심으로 한 통합적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재활·휴양시설을 지역사회 안으로 확대해야 한다. 노인의 욕구와 경험이 정책에 반영되는 참여형 복지 또한 중요하다. 무엇보다 노인의 삶을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이 존중받는 사회는 모든 세대가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사회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제도와 환경이 다가올 우리의 노년을 결정한다.
박용창 장로
<사회복지칼럼리스트, 제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