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을 수 있겠다. 지난 4.19의거 66주년 되던 날 돌아가신 소망교회 조병해 장로의 94년 인생은 두말할 것 없는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면 조병해 장로님은 딱 한 점으로 보이겠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
그는 완전한 수직으로 땅 위를 다니셨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소망교회 5시반 새벽기도회에 나오기를 작년 건강이 힘들어질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했다. 6척장신에 용모도 누구보다 준수하신 장로님의 꼿꼿한 모습을 교회 계단 앞에서 뵙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오페라 무대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그의 음성도 아침을 여는 종소리 같았다.
장로찬양대에서 나와 같은 베이스 파트에 속하셨으나 실은 바리톤에 더 가까웠고 타고난 미성이 ‘아깝다’고 항상 느꼈다. 아니 그 음성으로 1959년부터 처음에는 중앙방송국(KBS), 다음에는 기독교방송(CBS)에서 스포츠 중계에 뉴스 캐스트를 하셨으니 개인적 자산을 잘 쓰신 셈이긴 하다.
방송활동 35년에 후반에는 임원진에 들어 CBS를 종교방송으로 묶어 뉴스, 시사논평 기능을 막고 광고마저 제한하려 드는 정권과 맞서는 일에 힘을 쏟고 했으나 조병해 아나운서는 끝내 방송인의 멋을 지켰다.
1932년 태어나 13살 되었을 때 황해도 연백 그의 마을 앞으로 38도선이 그어졌다. 1950년 6.25 전쟁 발발과 동시에 공산군이 휩쓸고 내려왔고 중학생 조병해는 교회 지하실에 숨어 사모님이 넣어주는 밥으로 연명하다가 인천상륙으로 수복이 이뤄지자 인천으로 가서 KLO에 입대했다. 적 후방 교란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이 부대에서 조병해는 곽선희 대원을 만나 친구가 되고 후일 곽 목사가 개척한 소망교회에서 이들은 평생의 인연을 이어갔다.
방송에서 은퇴한 후 조 장로님은 김수희 권사님과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을 친지의 사업에 투자했다가 몽땅 잃고는 CBS 사우회 명예회장 직을 안고서 안빈락도, 유유자적의 삶을 살았다. 2008년 희수를 맞아 회고록 『황소걸음77 방송35』를 냈을 때는 이 나라 방송계의 주요인사들이 모여 그의 한 길 인생을 찬양했다.
6년만 보태면 1세기를 채웠을 그의 긴 생애에 굵은 마디들이, 일제 강점, 해방, 전쟁, 혁명, 독재, 민주화 그리고 산업화, 이런 이름들을 달고 지나갔고 인간 조병해는 그런 소용돌이 속을,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반듯한 노를 저어가며 통과했다.
그가 일했던 기독교방송은 복음 선교가 제1의 목적이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여러가지 세력들과 맞서야 했으며 그러는 가운데 다른 방송이나 매체들이 따르지 못하는 독자적인 비판기능을 발휘해 그 존재가치를 드러내기도 했다.
조병해 기자, 아나운서가 방송을 떠난지 오래고 그 동안에 세상은 많이 변했으며 이제부터는 더 심한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어 모두가 불안하다.
그러나 이 불안을 이기는 방도는 조병해 장로식의 꼿꼿한 자세로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닌가 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