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내부의 권력 지형 변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통치 원칙은 ‘법학자에 의한 통치(벨라야트 파기흐)’였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시작된 이 체제는 국가의 모든 중대사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1인 지배 체제였다.
그러나 지난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의 전격적인 공격 첫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이란의 절대권력 체제는 존립의 기로에 직면했다.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던 무즈타바 하메네이는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동시에 외부 적대 세력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철저히 베일에 싸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절대적 권력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의 핵심은 종교인 그룹이 아닌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국가최고안보회의(SNSC)를 중심으로 한 ‘안보 조직’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위기가 실질적 무력을 보유한 군부로 무게중심을 옮겨놓은 것이다.
파키스탄의 중재자 역할
이란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이 미·이란 사이의 새로운 중재자로 부상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강력한 군사 동맹을 맺고 있는 파키스탄은 이란의 궤멸적 붕괴가 자국에 미칠 안보적 타격을 최소화해야 하는 처지다.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 협력을 이끌어 내려는 실리적 목적도 크다.
기존의 중재역을 맡았던 오만, 카타르 등 걸프 국가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으면서 기존 중재국들의 영향력 공백은 파키스탄이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지렛대가 되었다.
이란 전쟁 이후 파키스탄 내 반미 여론이 들끓고 유가가 20% 이상 폭등하는 등 국내 정치·경제적 불안이 가중되자 파키스탄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전쟁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5년 이후 미국과의 외교적·경제적 교류가 확대되었으나 향후 파키스탄과 미국과의 관계가 지속적인 낙관론으로 이어질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상이몽
이란을 향한 공동 전선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략적 목표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스라엘은 당초 미군과 협력해 이란 정권의 전복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정권 붕괴가 실현되지 않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란과의 후속 협상 및 소통 과정에서 미국이 실리적 노선을 취하면서 이스라엘은 자국이 소외된 채 진행되는 ‘그들만의 협상’을 지켜보며 전략적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이는 향후 중동 정세의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공요셉 선교사
<PCK 파송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