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는 이미 한국교회에 오랫동안 큰 피해를 준 이단 중 하나이다. 구원파의 원래 명칭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이다. 이들은 한때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한국 교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집단이다.
특별히 한국의 정통교회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또 공격하며 자신들의 특수성을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교회에 크게 피해를 주었던 이단집단이다.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교주 권신찬), 대한예수교침례회(교주 이요한/본명 이복칠), 대한예수교침례회(교주 박옥수) 등 3개의 분파로 갈라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중에 박옥수와 이요한이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구원파로 널리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창설한 교주 권신찬 씨는 1923년1월 13일 경북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93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권신찬 씨는 1951년 7월 총회신학교(남산)를 졸업하고 1951년 11월 31일 목사안수를 받았다.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1962년 12월 21일까지 11년에 걸쳐 여러 곳을 다니며 목회를 하였다. 권신찬 씨는 1961년 1월부터 대구장로회 신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신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권신찬 씨는 늘 교리적인 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있던 중 1961년 10월 어느 날 네델란드 출신의 길기수(Gase Glass)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있던 중 “여러분 거듭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로부터는 자신의 설교가 영혼의 각성과 구원에 집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1962년 12월 21일 경북노회에서 목사직을 제명 받았는데 이유는 장로교 목사로서 장로교 교리와 다른 네델란드 길기수 선교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난 뒤 장로교 교리와 다른 교리 주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권신찬의 사위인 유병언 씨는 미국의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 선교사의 집회를 통하여 회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길기수 선교사와 딕욕 선교사는 교단의 소속이 안 된 선교사로서 개인적인 선교사의 임무를 띠고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다. 권신찬과 유병언은 1963년 독립선교사들과 인연을 끊고 자신들의 전도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1966년 국제복음주의방송(현, 극동방송)에서 방송목사로 시무하기도 하였다. 기성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당시 국제복음주의방송의 이름으로 개최되었던 수차례의 전도 집회를 통하여 구원파로 넘어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1974년 제95회 예장합동 측 정기노회에서는 전국교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국제복음주의방송국(극동방송)에 대해 항의를 하고 본 교단의 교역자들은 이 방송에 가서 설교를 하지 않도록 지시를 하는가 하면 이 방송국에 대한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 줄 것을 총회에 건의한 바 있었다.
심영식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