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소년가장 최연소 국제기능대회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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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우 씨는 울산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학원이 IMF 경제위기로 실패하여 가정에 큰 위기가 왔다. 그래서 부모가 이혼하여 그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같이 지내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순대를 팔아 생활을 지탱하였는데 때로는 할머니 일을 도와주다가 친구를 보게 되면 부끄러워 몸을 피하기도 하며 어렵게 공부를 하였다.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정상적으로 학비를 내고 입학할 수 없어 학비를 학교에서 부담하는 부산기계 공고에 진학을 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결심하고 그때부터 잠을 자는 일,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그의 전공 직종인 선반부문에 몰두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기능대회에 출전하였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고, 3학년 때에 금메달을 받았으며, 그리고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받았다. 그래서 졸업하기 전에 한화테크원에 특채로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1년 만에 국제대회 CNC 부문에 출전하여 1위를 하였다. 그 후 그는 기계 관련 기능사 자격증을 따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여 2015년 7월에 최연소자로 기능장과 기계가공분야의 자격증을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27세에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 100인 가운데 1명으로 뽑혔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딛고 2009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2015년 최연소 기계가공기능장 시험에도 합격하여 그가 바라던 모든 부분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는 2011년 직장 근처에 전셋집을 얻어 울산에 사는 아버지를 모셔왔는데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1년을 함께 지내다가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한화테크원에서 항공기 엔진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 현재 수입은 대학 4년 졸업자보다 훨씬 많이 받으며 저축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금번 창원대학교 메카융합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자만하지 않고 학문을 통해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초를 더 튼튼히 하여 기술면에 장인(匠人)이 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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