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사랑의 밀월 여행(密月旅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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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집에 들어서는 춘원을 보고 나혜석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그 특유의 주먹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잘 지냈어? 곧 이곳을 뜬다며?” 두 살 아래인데도 웬만한 것은 다 반말로 상대하는 겁 없는 신여성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20세기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그의 주요 작품은 ‘농부’, ‘자화상’, ‘스페인 해수욕장’ 등으로 그녀는 일찍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주로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글을 많이 써서 더 유명하기도 했다.

춘원은 나직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그간 잘 지냈고? 아무래도 주변에서 자꾸 피신하라고 하니, 말 듣는게 좋을 거 같아서 이곳을 곧 뜰 참이야.” “응, 그게 좋을 거야, 나도 요즘 미행당하고 있는 거 같아 많이 불안해! 조심해야지. 건강은?” “많이 좋아졌어.” “영숙이가 잘 해 주니까.”

비꼬면서 나혜석은 춘원의 취향을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오늘 밤에 먹을 것들을 주문하고 있었다. “춘원도 나를 여자로 좋아 하고 나도 춘원을 좋아 하는데 우리는 잠자리도 한번 같이 못해 보고 이렇게 늙어 간다 그지?” 

술기운도 아직 없는데 벌써 나혜석은 그 특유의 진한 대화로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다. 춘원은 그저 잔잔한 미소로 나혜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금도 못 할 것은 없지만, 내 그냥 참는다. 허영숙이 무서워서.” 그래도 춘원은 계속 웃기만 한다.

‘못난, 자식. 저렇게 용기도 없는 것이. 무슨 남자라고. 어디 쓰겠나.’ 나혜석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속으로 빈정거리고 있었다. 한편 춘원은 지난 날 자신의 첫사랑, 나혜석을 바로 눈앞에 두고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되어 있지만, 두 사람은 한 때 뜨거운 사랑을 했던 연인 사이였다.

나혜석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춘원의 안경 너머로 지난날의 아픈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슬프게 스쳐가고 있었다.

춘원의 첫사랑, 화가 나혜석

우리나라 근대 신여성의 효시는 단연 나혜석이다. 20세기 초 화가이자 문필가였던 나혜석(羅蕙錫)은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고 인간이기 전에 예술가였다. 예술가로서 그녀의 삶은 예술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의 ‘해방론’에 가까운 여성관은 전통적인 여성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그녀의 대범한 도전은 하나의 불행의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부유한 집안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호는 정월(晶月)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를 겸비했으며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젊은 시절 그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건달기 있는 둘째 오빠 나경석(羅景錫)이였다.

그녀는 나경석의 권유로 17세에 동경 유학길에 올라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녀의 삶은 모든 것이 일등이었다. 진명여고 수석졸업, 한국 여성 최초의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입학, 서양화전공,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최초의 개인전 등 성공신화를 써나가기에 바빴다.

그러나 성공한 여성으로 살기에는 그 시대가 그녀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 똑똑하고 자아 의식이 강한 나혜석이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꽃같은 예술가적 혼을 가진 그녀의 영혼은 너무나 자유분방했고 전통적인 결혼생활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른 나이에 그녀의 인생에서 첫사랑은 동경 시절에서 만난 최승구였다. 시인이었던 최승구는 동경 유학생 중, 천재로 불리는 유능한 미남이었다. 이 최승구를 나혜석에게 소개한 사람은 오빠 나경석이었는데, 최승구는 이미 결혼을 한 몸이었다. 집안에서 맺어준 아내가 있었으나, 최승구와 나혜석은 유학지인 동경에서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1916년 최승구가 폐병으로 사망하자, 나혜석은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닥쳐 온 이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귀국해서 모든 시간을 예술에 걸고 있을 때였다. 오늘도 그녀는 동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폐허’, ‘삼천리’를 비롯한 신문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신여성으로서 맹렬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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