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난지도 삼동 소년시 ⑪
소년들 자신의 미래 희망 향해 굳게 싸워
초‧중학교 의무 교육 실시, 고교 실시 계획
소년촌, 도시 국가 형태로 이상적 운영
교회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소년낙원 설계
그리고 시민 중에서 헌법을 위반했거나 공공물을 파괴했거나 타인의 물건을 손해냈거나 시민의 자격에 손상을 입힐 만한 과오를 범했을 때에는 상기한 재판에 의해 처벌하는데 그 처벌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위법의 경중에 따라 1시간 내지 2시간의 반성 정좌(靜坐), 물질에 손상을 입힌 경우에는 그 경중에 따라 동등 가치의 벌금 및 노력 봉사, 한 끼의 결식과 벌금 부과, 1일 내지 3일간의 근신 처분.
이런 여섯 가지 처벌이 있지만 절대로 체형은 가하지 못한다. 그리고 7회 이상 재판을 받아 처벌된 자는 시민권을 박탈당한다.
시에 설치되어 있는 공공시설인 병원, 이발소, 목욕탕, 식당, 도서관 등 모두를 소년 시민 자신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자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 들러 봤더니 15세 가량 된 시민이 어린 시민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어려운 진찰이나 치료 및 처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년시민 자신들이 처리한다고 했다.
이상 열거한 여러 가지 사실을 한 마디로 종합한다면, 이 삼동 소년시는 그대로 우리 일반 사회의 축소도이며 그 속에서 불우한 많은 소년들이 자신의 과거와 싸우면서 미래의 희망을 향해서 굳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동 소년시 헌장 제1장 제1조에 명기되어 있듯이, 삼동 소년시는 집 없는 소년의 집이며, 공부 못한 소년의 학교이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의 친절한 사회이다.
이 조항을 읽으면서 기자는 문득 어떤 서적에서 읽은 스위스의 고아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스위스의 많은 시민이 연합국의 용병(傭兵)으로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하여 전쟁 종결과 더불어 많은 고아들이 생기게 되었으며, 그들은 불우한 운명을 저주하며 각지를 유랑했다. 그때 이를 한탄한 한 사람이 그들 모든 고아를 한데 모아서 같이 고생하면서 그들을 교육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당시 고아였던 소년소녀들이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스위스를 지상 최고의 천국으로 이끌고 나아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 사실을 현재 소년시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어린 시민들과 전국 각지의 고아원에 있는 소년소녀들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중략)
다섯 시간에 걸친 탐방을 마치고 귀로에 올랐을 때, 소년군 전원이 특별히 정문에 2열로 정렬하며 군대식 환송을 해주었다. 그들의 씩씩한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오직 그들이 내일의 조국을 두 어깨에 걸머지고 나아갈 참된 일꾼이 되어 주기를 빌 뿐이다.
‘난지도 소년촌 방문기’
같은 무렵 <한국기독공보>에 게재된 취재기사를 다음에 인용한다. A기자란 익명으로 쓰여진 그 기사는 ‘난지도 소년촌 방문기’란 제목인데, 커다란 사진 두 장과 함께 6단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 역시 다소 중복된 점이 있겠지만, 기사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한 주일에 이어서 편집과 인쇄와 발송이 끝난 7월 22일 오전 9시 반, 본사 기자 일행(채기은 편집국장, 백춘근 기자, 이문하 기자)은 서울 역전에서 북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가 독립문을 지나 홍제동 대로를 달리니, 이 길이 이북과 통하는 길이라는 생각에서 난지도행과는 다른 감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 버스가 철의 장막을 뚫고 그리운 고향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버스는 한 시간 가량 달려 의암을 지나 수색 종점에 닿았습니다. 도보로 철로를 건너 15분쯤 서쪽으로 걸어 산모루를 돌면 난지도가 눈앞에 펼쳐 있습니다.
배로 한강 나루를 건너 상륙하여 소년촌 보초선에 발을 멈추었습니다. 기념 촬영이 끝나고 보초의 승낙을 얻어 소년시에 들어섰습니다. 심령 수양 캠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광고등 학생을 인솔한 김동수(金東銖) 목사를 만나 인사를 교환하고 헤어졌습니다.
소년시청에 다다라 소년시장 김용호 군(각하가 아님)에게 입시(入市) 인사를 하였습니다.
총지휘자 황광은 선생의 시정 현황을 듣고 수고를 마음으로 찬양하고 정중한 인사를 교환하였습니다.
소개하는 소년시의 상황에 의하면 시 구역은 12만 평, 시민 총수는 198명으로, 세계 최소의 인구를 가진 시일 것입니다. 생활은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만큼 모든 재산은 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소속되어 있습니다.
시의 재산으로는 건물로서 숙소 15동, 교사 4동, 청사 1동, 호텔 1동, 창고 1동, 교회 1동, 병원 1동, 실로암 목욕탕 1동, 다방 1동 등이며, 가축으로 황소‧암소 10, 젖소 11, 돼지 11, 토끼 40, 닭 88, 오리 100여 마리가 있으며 농사 기구로 트랙터 1대가 있어 금년 봄에 40만 평을 갈아 젖혔다 합니다.
시민은 모두 시민권을 향유하고 있으며, 아주 어린 소년(4세)은 보호권을 갖고 특별 보호를 받고 있고, 장형에게는 장형권과 가족권이 있다고 합니다.
시민에게는 초등학교 중학교의 의무 교육이 실시되어 오전 중에 45분 수업 4시간 교육을 받아 중학교 과정을 마치게 되어 있고, 앞으로는 고등 교육까지 실시할 예정이랍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노동할 의무가 있으며 ‘근로표’를 얻어야만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각각 근로에 따라 임금이 두 주일에 한 번씩 지불되는데, 시 은행에서 발행한 1평, 1화, 5화, 10화권이 통용되고 있으며, 이 화폐로 목욕, 이발, 다방 출입, 도서관 출입, 통신, 물건을 매매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는 무료 치료입니다. 이와 같이 소년촌은 완전한 도시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이상적으로 행정 생활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올해에 낙화생만 3만 평을 심었으며, 각종 채소, 무, 배추, 토마토, 오이 등과 수수, 옥수수, 감자 등의 곡물 소출로 식량 보충을 하리라 합니다.
주일날이면 시민 전원이 교회에 모여 황광은 선생의 인도 아래 엄숙하게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공부하고, 믿음과 소망을 기르며 화목하는 생활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소년낙원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년촌(Boys Town)은 30년 전 미국 네브라스카에 있는 아나주란 사람이 시작한 사업으로서, 각국에서 본을 받아 유랑하는 소년들을 수용하여 인격적 교육을 시키고 그들의 개성을 살려 주며 직업 의식과 기술을 배워 주어 하나의 독립한 인격을 양성하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