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얼룩진 안경, 얼룩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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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주유하는 동안 차의 앞 유리를 닦아주었습니다. 주유소 직원은 부부에게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기름이 다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기름이 다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못들은 채, 자동차 앞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얼른 알겠다고 대답하며 다시 앞 유리를 닦았습니다. 혹시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얼룩이 묻어 있는지 꼼꼼히 살피며 열심히 닦았습니다. “손님, 다 닦았습니다.” 직원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아직도 더럽군요. 당신은 유리 닦는 법을 잘 모르나요? 한 번 더 닦아 주세요!”

그때였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남편의 안경을 벗겨갔습니다. 그리고는 안경에 입김을 쏘이더니 부드러운 천으로 렌즈를 닦아 남편에게 씌어 주었습니다. 남편은 깨끗하게 잘 닦여진 유리창을 볼 수 있었고, 그제 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 남편은 부끄러움에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누구나 마음의 안경을 쓰고 삽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안경, 얼룩진 안경, 깨진 안경, 색안경 등등.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에 어떤 안경이 씌어 있는지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 혹시 흐릿하게 보이시나요? 아니면 맑고 선명하게 보이시나요?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안경을 확인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자신에게 충직한 조언을 해 줄 사람을 사방팔방으로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인에게서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소개받고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사람 됨됨이와 그릇의 크기를 알아보기 위해 무학대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눈에 당신은 돼지같이 보이오.” 이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별다른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눈에는 왕이 부처같이 보입니다.”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태조 이성계가 “정말 내가 부처같이 보이오?” 라고 묻자, 무학대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입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주고받은 농담으로 전해오는 《불시불 돈시돈(佛視佛 豚視豚)》의 유래입니다. 이 농담의 실질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것만 보이고, 마음이 깨끗하면 깨끗한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정하고 불의하게 보이는 것이고, 멋지게 생각하면 멋지게 보이는 것입니다. 좋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좋게 보이므로 이 세상은 더없이 좋은 세상이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든 긍정적인 생각이든 각각 자신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법입니다. 자신의 눈이 세상의 어디에, 어느 곳에, 그리고 어느 수준(水準)에 고정이 되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오늘 처음에 나온 이야기처럼 얼룩진 안경을 쓴 사람에게는 사물이 얼룩져 보이게 마련이고, 동시에 얼룩진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얼룩져보이게 마련입니다. 

신약성경 산상수훈(山上垂訓, 마 5-7장)에는 《티와 들보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티’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를 가리킵니다. 풀어 말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흠’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반면에 ‘들보’는 ‘대들보’ 또는 ‘통나무’를 비유하여 진리를 거스르는 ‘큰 허물’이나 ‘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비판에 대한 성도들의 자세를 지적하신 예수님의 교훈의 메시지입니다. 남들의 작은 문제보다 더 큰 자기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외식(外飾)하는 위선적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큰 허물이나 죄는 도외시한 채, 눈에 불을 켜고 다른 이들의 작은 실수나 흠을 찾아내어 신랄하게 정죄(定罪)하곤 했던 사실을 우리가 성경에서 봅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심각한 폐단(弊端)을 ‘티’와 ‘들보’의 비유로 예리하게 지적하여 쉽게 일깨워주셨는데 이 비유는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도 꼭 같이 적용되는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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