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말씀을 따라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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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주인공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비결이 말씀대로 따라 갔더니 복(복의 근원, 12:2) 자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성공은 보편적으로 건강과 재물, 그리고 명예와 권세라고 하는데 이것이 한 번에 해결되는 성경의 비결을 제시해 주시는데 일단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떠났더니 복을 주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9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하시며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수천 년 전의 조상 아브라함의 복을 지금, 여기, 현실에서 믿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된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바라는 것을 주실 것을 믿어야 기뻐하신다라고 합니다. 모세 역시 신명기 6:4∼13에 자세히 가르쳐 주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며 자손에게 가르치고 떠나지 아니하면 장수하며, 3절에 “복을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그리고 이어 구체적으로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며 묵상하고 살 때 상속자(롬 8:17∼18)로서의 10절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절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라고 하시며 임마누엘 하나님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씀에 접근하여 우리도 이 복을 누려야 합니다. 목동 출신의 다윗도 복 받은 이유가 말씀을 묵상한 이유가 아니었던가요? 시편 1:1∼6에 다윗은 시작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은’으로 해서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에게 임한다’라고 합니다 이 묵상은 히브리어 ‘하가’ 곱씹어 삼키다라는 뜻이 있는데 계속해서 읽고 연구하고 생각하다 보면 재미가 있고 이 말씀에 늪에 자신이 빠져 들어가는 경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수 1:8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여기서의 ‘묵상’은 히브리어로 ‘하가’인데 ‘낮은 소리로 천천히 읽어 나가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단 신, 구약 66권의 성경말씀을 읽어 나가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때가 되면 역사하십니다(히 4:12). 그리고 심령에 불이 붙어 전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해짐을 느낄 것입니다(렘 20:9). 이어 다윗은 시 1:3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때를 따라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 얼마나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하며 은혜가 되는 축복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 ‘다 형통하리로다’의 ‘형통’은 ‘바위를 뚫고 지나가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바위를 뚫어야 되는 삶에 ‘진퇴양난’, ‘진퇴유곡’의 환경이 있을지라도 전지전능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함을 믿어야 합니다.(신 31:6, 히 13:5)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렘 17:7~8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과 같으리라” 할렐루야! 한국 복음화와 가난 탈출, 인생역전의 기회와 찬스의 축복이 바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 하루, 한 걸음 한 걸음, 전진 또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 19:7~10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중략)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왜? 이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놔 두고 방황하고 사시는 겁니까? 시 1:4에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에 불과합니다(시 119:53,  암 8:11~13). 시 1:5에 악인이 심판을 못 견디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못 들어 옵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하며 호 6:3 여호와를 알자 호 6:6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심과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시 1:6에 말씀을 묵상하는 의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악인은 망함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묵상하느냐? 다윗은 시 70:5에 가난하고 궁핍한 현실과 미래 소망하고시 71:8~9과 시 71:18 미래와 장래까지 책임을 져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 52:7에 “좋은 소식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산을 넘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요 1:1∼5에 말씀이 하나님이시며 골 1:13~18에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심을 증거하며 그 분이 우리 아버지시며 우리는 자녀이며(요 1:9~12), 또한 상속자임을 (롬 8:17~18) 믿고 확신하여 예수의 좋은 병사로서(딤후 2:3∼4)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엡 6:17) 이 땅의 마귀의 권세를 척결하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부르는 예수의 청정 국가가 되게 하는 주역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유무한 목사

<빛나는칠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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