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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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갈등을 허문 감동의 순간… 하나됨을 향해

허깅 타임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다

은퇴장로들의 화합 위한 특별한 여행

여느 때 같으면 분위기를 싸늘하게 가라앉힐 이야기였으나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반응이 꽤 긍정적이었다. 강사 네 명이 등장해서 10분 스피치를 하고 중간 중간에는 김병년, 윤갑병 장로가 뒤늦게 배운 색소폰, 드럼펫 협주와 독주로 분위기를 살렸다.

예배 마지막 순서로는 보통 주기도송을 부른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특별한 준비를 했다. 전날 나는 반주를 맡기로 한 권사님께 “우리가 15분 정도 허깅 타임을 가지려고 하니 그에 맞는 음악을 준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해뒀던 것이다. 권사님은 “그게 될까요?”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될지 안 될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일단은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마치는 시간이 됐을 때 나는 일어나서 “새해 초이니 우리 모두 함께 애국가를 부릅시다”라고 제안했다. 소망교회에서는 신년 예배 끝에 애국가를 부른다. 함께 애국가를 부를 때면 ‘하나됨’의 짜릿한 긴장이 느껴진다. 애국가 제창이 끝나자마자 나는 “자, 이제 테이블 별로 허깅을 합시다!”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고 쭈뼛거리던 사람들이 곧 가까운 순서대로 허깅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되자 끊어질 줄을 몰랐다. 권사님께서 피아노곡을 자연스럽게 이어 연주하는 동안 전체가 돌아가면서 먼 테이블까지 가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장로끼리 이렇게 끌어안아 보기는 처음이네”하는 말도 들렸고 웃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렇게 한결 따스해진 분위기 속에서 신년 파티는 계속됐다. 김광석 장로가 준비한 고급 화장품 선물까지 받아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헤어졌다.

어떤 말이나 설득, 심지어는 기도회로도 안 되던 일이 불과 2시간여 만에 이뤄진 것이다. 김 회장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정말 감격적이다”라면서 기뻐했다. 내 기분도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주일예배에서 만나도 외면하기 일쑤였고, 친상을 당해도 문상조차 꺼리던 사이였던 터라 이날의 변화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앙금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한 것은 이제 예전의 그 견고하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주일에 만나면 어정쩡하게라도 인사들은 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는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아마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다 갈등을 풀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로들 모두 지성인이고, 인격자고, 신앙이 깊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갈등도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 아니다. 개인 간의 감정도 없다. 그저 교회를 생각하는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한번 시작된 불화는 점점 심해져,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어지면서 누가 봐도 꼴사나운 옹이가 됐다. 말이 7년이지 그 기간은 연옥의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갈등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좋은 계기가 찾아왔다. 소망교회 은퇴장로 42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 도와주시는 권사, 집사들까지 총 67명이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순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전라남도 순천만으로 향한 것이다.

그냥 그런 나들이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당회에서 싸우던 사람들, 화해할 의지는 고사하고 교회에서 마주쳐도 인사는 커녕 아는 체도 않던 사람들이 같이 여행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라면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실은 교회에서도, 아니 교회라서 더더군다나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은퇴장로회 회장을 맡고서 ‘은퇴장로들 간에 서로 서먹함을 지우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 ‘내가 회장직에 있을 때 물꼬를 트자’는 생각이 들어 준비한 행사였다.

처음 이 행사를 제안했을 때는 듣는 사람마다 거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갈등이 회복 수순에 있었다고는 하나 표면적인 분란이 잦아들었을 뿐, 서먹하고 거북한 그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풀릴 수는 없었다.

나는 먼저, 교회 안 여기저기에 “은장회(은퇴장로회)가 봄나들이를 간다”고 소문을 냈다. 관심 없다고 의도적으로 표를 내는 장로 앞에서도 여행계획을 일부러 자랑했다. 그러자 서서히 한두 사람씩 도와주겠다는 권사들이 나섰다. 후배 장로들 몇몇은 여행 경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이번에는 은퇴장로회 장로들한테 “후배 장로들이 이렇게 신경 써줬다”고 자랑을 했다. 그렇게 해서 못 이기는 척 참가를 신청하는 장로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늘어나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행하게 됐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지식포럼’이 열렸다. 중국의 정치‧경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 홍인기 장로(전 증권거래소 이사장)가 중국의 경제 및 사회의 변화와 미래에 대해, 북한학 박사인 박완신 장로(전 세계사이버대학교 총장)가 북한 정권과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열띤 강연을 했다.

순천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소망교회 부목사로 재직했던 임화식 목사가 시무하는 순천중앙교회를 방문했다. 잘 꾸며진 교회 북카페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는데 악기를 가지고 온 한 장로님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아마추어 성악가인 장로, 권사님들의 협주, 중창, 듀엣, 독창이 어우러지면서 즉석에서 훌륭한 음악회가 됐다. 기획과 연출이 전혀 없었는데도 미니 음악회는 훌륭하게 진행됐고, 모두가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이처럼 인적 자원이 풍부한 것이 소망교회의 복이고 자랑이다.

순천의 별미 짱뚱어탕과 꼬막정식 등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서 선암사 초입 계곡에 위치한 한옥펜션으로 갔다. 넓은 온돌방에 남녀를 나눠 6명, 8명, 10명씩 한방에 배정했다. 일부러 부부한방을 여럿 잡지 않고 큰 방을 잡아서, 서먹한 관계끼리 한방에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편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계곡의 물소리, 초저녁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보낸 그 하룻밤, 오순도순 도란도란 즐거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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