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시골교회에 강의 갔을 때의 일이다. 담임목사께서 내게 한 가지 간곡한 부탁을 하셨는데, 절대 예수 믿으라고 하지 말고, 간증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지난달 초청된 강사가 강의 중에 어르신들께 예수 믿고 구원받아 행복하게 사시라고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단다. 그 강의를 들은 어르신들은 저 교회가 우리를 예수 믿게 하려고 식사대접하고, 선물을 주고, 강의도 한 것이라며 다시는 교회에 가지 말자고 결의를 한 것이다. 어르신들의 마음은 그렇게 닫혀 버렸다. 그러나 이후로도 교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극한 정성과 따뜻한 환대, 지속적인 섬김으로 다시 다가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결국 그분들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한 학기가 지난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복음은 결국 강요가 아닌 관계 속에서 열매 맺는다는 진리를 보여준 사례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노인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대표적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노인교실’을 들 수 있다. 노인교실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건강, 여가, 식사, 상담 등 어르신의 삶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며 복음을 전하는 접촉점에 다름 아니다. 교회 안에서 노년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신앙의 연속성을, 비신앙인들에게는 교회의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은 교회의 노인 사역은 큰 타격을 입었다. 노인교실은 대부분 운영을 중단했다. 이후 재개하려 해도 ‘점심식사 제공’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혔다.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회는 노인교실을 다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점심식사 없이는 노인교실이 불가능할까.
이제는 노인교실의 운영 방식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어르신들은 결식 위험이 높았고, 교회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현재의 노년층은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스스로의 건강과 영양에 큰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다. 굳이 식사를 중심으로 운영하지 않아도, 알찬 ‘프로그램 중심’의 노인교실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전강의 오후강의를 각각 1시간씩 제공하고 오전에는 이론 강의를, 오후에는 여가활동을 제공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간단한 다과와 간식을 강의실에 배치해도 좋다.
노인교실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1973년 정릉교회에서 교회노인교실이 처음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중요한 선교현장이었다. 복지를 넘어, 어르신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그들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평생 교육의 장이었다. 정부의 복지정책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고 복음을 통해 어르신들의 영혼에 생명을 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노인교실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다. 총회 차원에서도 노년에 꼭 필요한 교육과정을 수립해 교회마다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다. 노인교실은 노인들의 복음 전파의 전초기지요, 고령사회에 교회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이다. 이제 다시 노인교실을 통한 노인선교의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점심 한 끼가 아닌 영혼의 한 끼를 나눌 수 있는 교회,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교회에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강채은 목사
<사랑교회, 前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