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분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분열된 국가를 하나의 힘으로 응집시킨 대한민국의 국부 임에는 누구도 부정 못할 것이다.
물론 소련을 업고 북을 먼저 사회주의 독재국가로 개편한 북한이 있지만 유엔에서 단일 국가로 승인받게 한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 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의 중요성과 우리 민족의 미래관을 투시하며 신문명과 신문화를 도입해 나태와 빈곤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을 깨우치는 선각자 역할을 미리 인지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치외교가를 꿈꾼 분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그들의 야욕을 미국의 정관계 요로에 걸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며 한편 종교계나 외교계에 심어놓은 다방면의 친면을 활용해 우리나라의 주권과 독립을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이신 망명 독립운동가셨다.
중국을 중심으로 가칭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해 망명 독립운동을 한 김구 주석과 함께 오늘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위대한 선각자요 위인이었다.
돌이켜 보면 농업을 중심으로 한 고유의 1차 산업과 러시아와 중국, 일본의 외교 각축장이 된 동북아의 작은 변방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나 미래를 개척할 만한 입지적인 사안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미개인 정도의 취급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원래 민족이 유순하고 침략을 모르며 오직 정도(正道)만을 존중하는 민족이었다.
더구나 단일민족으로 독자문화를 가진 하나의 영역권에서 지정학적으로 수많은 침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혼신의 힘으로 단결해 막아내며 민족 저항으로 주권을 지킨 우수한 민족임에도 일부 매국노와 당파 싸움과 소모적인 정쟁으로 일본에 나라를 강제로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 불쌍한 처지였다.
김구 선생이 그래도 작은 군사력으로 독립투사들을 모아 총칼로 일본과 대적하며 싸웠다면 이승만 박사는 세계 외교의 각축장인 미국에서 우리의 실상을 알리며 일본의 야만과 침략 근성, 그리고 국가 강제 찬탈을 알리며 독립을 위해 세계 요로에 호소하며 일면 미국을 비롯한 유엔 기구를 설득하며 다방면에 걸쳐 노력한 분이다.
해방 당시 국민 1인당 소득 60달러 정도의 세계 최빈국의 우리나라의 사정을 국제사회와 유엔에 호소해서 여러 나라의 원조로 최저의 국민식생활을 문제 해결과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혼신의 역량을 기울였다.
그분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은 6.25 동란 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관을 설득해 유엔군을 우리나라에 참전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지키게 한 것이다.
만약 그때 이승만 박사의 탁월한 외교적 수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공산화가 될 것이었음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이후 각 국계기관에 호소한 우리의 처지와 빈곤함, 그리고 전쟁의 참화로 기아에 허덕이는 실상을 소상히 국제사회에 진정함으로써 우리는 그 원조로 작은 산업 하나라도 일으키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의 발전의 밑거름과 새로운 희망을 보게된 것이다.
당시의 그분이 국민을 단합시킨 한 마디 명언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다. 국가의 존망이 가장 위태롭고 국력이 쇠약할 때 처절한 6.25 전쟁이 발발해 국민들이 우왕좌왕 정신을 못 차릴 때 그분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란 하나의 명언으로 국민을 결집시키는 연설로 우리에게 당시 처한 위태롭고도 힘든 현실적 상황을 인식시키고, 우리 민족을 단합시키며 단번에 그 혼란스런 정국과 민심을 되돌리는 크나큰 일을 해내신 것이다.
국민의 마음과 뜻과 정신을 한데 집중시킨 구심점의 역할이 된 이 명언은 정치가요 사상가요 철학자인 그분 아니고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당시에는 참으로 유효적절한 명언이었다. 또한 그분은 반공을 국시로 맨처음 올린 지도자였다. 말하자면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의 창시자였다.
그러나 일부 독재로 인한 4.19혁명을 유발시킨 책임은 그분의 일생에 하나의 과오로 치부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만 하더라도 완전 자유가 보장된 사회였다면 그 첨예하게 대립된 우익과 좌익의 대결을 잠재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유엔에서 어떻게 단일국가로 승인받을 수 있었겠는가. 당시만 하더라도 근 7할 이상이 지주에게서 지배받던 농지개혁과 적산 농토를 시의적절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농민정책이 탄생했겠는가. 일부 독소적인 상황과 미래를 예견하는 그분의 선구안이 일부 민주주의를 퇴락시킨 점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분만의 용단과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말하건대 이승만 대통령은 오늘의 우리나라를 있게한 탁월한 지도자요 건국의 아버지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어렵고 힘들고 수난받을 때 혹은 민족이 분열될 때 중지를 모아 하나의 일념으로 발전적 미래의 초석을 다진 그분을 더러는 되돌릴 수 없는 여러 과오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진정 우리 대한민국이 배출한 당대의 위인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