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우치무라 간조의 명상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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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하는 마음

우리는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우리가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었으니 우리를 사로잡은 자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이 즐거운 노래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중 하나를 불러라”하고 말하였음이라. 우리가 외국 땅에서 어떻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시편 137:1-4)

애국하는 마음, 이것이 우리의 충심이다. 이 지성을 내가 스스로 자아낼 수는 없으나, 이것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의 생명을 조인다. ~ 나의 우리나라에 대한 정은 사람의 그 어머니에 대한 정과 같다. 나는 무심결에도 그녀를 사랑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산천에는 생명이 충만한 것 같아서 잠잠한 가운데 내게 응답하고,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감이 있다. 물질엔 생명이 없다고? 나의 온 몸은 그 세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토가 변해 오늘의 내가 된 것이 아닌가? 나는 국토의 일부분이다. 내가 이 땅에 붙어 있음은 나 자신이 이 땅의 한 구성분자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내 영혼은 나에게 속해 있어 – ”

평화와 구원의 복된 소식,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기쁜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산을 넘는 발이 참으로 아름답구나!(이사야 52:7)

시인은 땅의 임자에게 말한다. “땅은 당신의 것이지만 그 풍경은 내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대 자연을 즐기기 위해 구태여 산과 들과 논과 숲과 강을 내 것으로 소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정치가들에게 말한다. “정권은 당신의 손아귀에 있지만 교권(가르치는 권한)은 내게 있다.”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군대나 경찰이나 법률이나 권력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시인은 종교가들에게 말한다. “사찰과 교회는 당신네들에게 속했다. 하지만 영혼은 나에게 귀속되었다.”

인생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고, 구원의 은총을 전하고, 성령의 환희를 나누어 주는 데는 반드시 스님과 교황과 감독과 목사와 전도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직관으로 하나님을 알아 –

예수님이 그 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놀라 “그에게 저런 지혜와 놀라운 힘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서 받았을까? 그는 목수이며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그리고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이며 그의 누의 동생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않느냐?” 하며 예수님을 배척하였다.(마가복음 6:1-3)

예수님은 감독, 목사, 선교사, 신학박사, 같은 류의 사람이 아니셨다. 그 분은 한 번도 머리에 관을 써 보신 적이 없으며, 또한 몸에 법의를 걸치신 적이 없다. 다시 말하면 그 분은 오늘날 세상이 말하는 종교가가 아니셨다. 그 분은 한 번도 그의 종교로 인해 봉급을 받아 보신 적이 없다. 그 분은 나사렛의 한 평민이었으며,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목수라는 직업을 갖고 계셨다. 그러기에 그분은 직관적으로 하나님을 알았지, 신학교나 대학의 철학과에서 종교 지식을 배우신 것이 아니다.

내가 그분을 존경하는 것은 그분이 위대한 평민이셨기 때문이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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