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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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8일) 명량해전(鳴梁海戰)이 전라도 남쪽 바다 끝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벌어졌다. 아군(我軍)의 상황은 미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바로 두 달 전, 원균(元均)이 지휘하던 조선수군 함대가 거제도 칠천량(漆川梁) 해전에서 궤멸(潰滅=완전히 무너져 없어짐)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거제도 칠천량 해전에 참전했다가 도망친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배설(裴楔)이 숨겨놓았던 판옥선(板屋船) 12척을 8월 19일 회령포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또 한 척을 보태서 도합 13척의 판옥선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패잔병들은 전쟁공포증에 사로잡혀 싸우기도 전에 ‘백전백패(百戰百敗)’라며 낙담하고 있었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해남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에 도착하자마자 신병(身病)을 핑계로 도망쳤으니 군기가 땅에 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충무공은 7월 18일 백의종군(白衣從軍)의 몸으로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 진영인 초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원균(元均)이 칠천량 해전에서 궤멸 당했다는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러자 선조(宣祖) 임금은 또다시 장군을 부랴부랴 찾았다. 8월 3일 아침 일찍 선전관(宣箋官=임금의 글을 맡은 신하) 양호(梁護)가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지(敎旨=임금의 명령서)와 함께 선조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대의 직함을 면(免)하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白衣從軍)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이 사람의 모책(謀策)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선조와 조정(朝廷)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책(秘策)으로 이순신을 다시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장군은 교지(敎旨)에 사은숙배(謝恩肅拜=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경건하게 절을 올림)하고 직함 외에 아무것도 없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곧바로 길을 나섰다. 바로 그때 장군의 휘하(麾下)에 있던 수군장수와 지방관들이 장군을 만나러 와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보성군에서 선전관 박천봉(朴天鳳)이 가져온 선조임금의 편지에는 “지난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결과로 해전이 불가능할 경우, 육지에 올라가 도원수(都元帥=군무를 통괄하던 벼슬)인 권율(權慄)을 돕도록 하라.”는 명(命)이었다. 

수군을 폐지(廢止)하려는 선조의 변심(變心)에 장군은 화급히 장계(狀啓=신하가 왕에게 보고하던 문서)를 올렸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戰船)이 있사옵니다. 전쟁에 임할 선박의 수효가 절대 부족이지만 보잘 것 없는 신(臣)이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조선의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의 비범한 의지를 담은 위의 글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오히려 승산이 있습니다.”로 해석되기도 한다.  

명량해전의 전과(戰果)는 13척의 전선(戰船)으로 133척의 일본 수군 함대를 막아냈다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이자 신화(神話)를 남겼다. 물목이 좁고 험한 ‘울돌목’을 이용한 장군의 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장군은 장졸들에게 “병법(兵法)에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고 했다. 너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즉시 군율(軍律)로 다스려 한 치도 용서치 않을 것”이라며 거듭 엄하게 다짐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고 배수진(背水陣)을 친 것이다.

수군들의 힘이 다해갈 무렵, 장군은 뱃머리를 돌려 곧바로 20문의 천자총통(사정거리 약 1km)을 연이어 발사하고 불화살을 빗발치듯 쏘아 적의 배를 하나 둘씩 섬멸(殲滅)시켜 나갔다. 검푸른 바다는 검은 연기와 매캐한 화약 냄새와 양쪽의 함성으로 뒤덮여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방불케 했다.

3시간 정도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 뒤 왜군선(倭軍船) 31척이 모두 격파되었다. 죽거나 다친 왜군은 8천여 명에 이르렀다. 결과는 완벽한 조선수군(朝鮮水軍)의 승리였다.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일본 수군함대 300여 척은 모두 격퇴되었고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이렇게 썼다. “차실천행(此實天幸)” 풀이하면 “이[此]는 실(實)로 하늘[天]이 내린 행운(幸運)이었도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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