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역사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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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회에서는 중국의 고사에서 배우는 일이 많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니 과거의 잘잘못을 귀감으로 삼아 잘한 것들은 이어받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고쳐서 민본주의(民本主義) 민생 우선의 정치를 펼쳐주기 바란다. 역대에 많은 정부가 앞사람들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해서 실패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후라이팬 위에서 여린 생선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하기 바란다. 백성들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성나면 그 배를 뒤집어엎기도 하기 때문이다. 임기를 시작할 때에 임기를 끝내고 영광스럽게 끝내는 장면을 늘 생각해주기 바란다. 끝이 좋아야 성공이다. 초지일관! 출발할 때의 각오와 자세가 끝나는 날까지 똑같기를 바란다. 노름판 돈은 새벽 문턱을 나갈 때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초저녁에 따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총평은 그의 관에 못을 박을 때에야 제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인사권은 실로 엄숙한 것이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국민 모두(대다수)가 행복해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최선을 바라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찾아내기 바란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는 한 정당의 대표였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반쪽 대통령을 벗어날 수 있다. 상대 후보의 정책 공약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다시 새로운 공약으로 재조정, 통합해야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중국 고사를 몇 개 찾아보려고 한다. ①일남국(日南國)의 소년-한나라의 소열황제 유비(劉備)가 천하의 학사들을 소집했을 때 일남국(日南國)의 한 소년이 왔는데 그 이름은 장중(張重)이었다. 나이 14세로 학사에 입궐했기에 한 소제가 그를 기이하게 여겨 그가 누군가 물으니 좌우에서 그도 학사의 한 사람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인고?” “臣은 일남국 사람입니다. 본국에서 臣의 학식을 인정하여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황제가 놀리는 질문을 던지자 장중이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이에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 하자 장중은 박장대소하며 폐하 앞에서 죽게 되니 영광이라고 했다. 황제가 친히 장중을 시험하는 질문을 계속했다. “하늘에 머리가 있느냐?” “있습니다. 동향시(東向詩)에 하늘이, 봄에는 서쪽을 동쪽 머리로 본다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발이 있느냐?” “있습니다. <詩>에 하늘 걸음이 어렵다 했습니다.” “하늘에 귀가 있느냐?” “있습니다. <詩>에 하늘 구고에서 학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황제가 질문을 그치고 그를 크게 칭찬했다. ②일자천금(一字千金)-진시황의 신하 가운데 여불위(呂不韋)라는 인재가 있었는데 그의 집에는 하인이 1만 명이나 있었다. 그 당시 위나라에는 신중군, 초나라에는 춘신군, 소나라에는 평원군, 제나라에는 맹상군이라는 대귀족들이 있었는데 모두 선비들을 불러 후하게 대접해 그들 집에 모여드는 식객(食客)이 매일 5천 명이나 되었다. 당시에는 천하를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다. 권신의 이론들을 책으로 엮어 퍼뜨리기도 했다. 여불위도 자기 집에 오는 식객들에게 각각 책을 지으라고 하고는 그것들을 모아 편집해서 20여만 어(語)에 달하는 큰 책을 만들었다. 자기 나름대로는 이 책에 천지와 만물과 고금동서의 모든 것이 망라되었다고 생각해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이 책을 도읍지인 함양의 시장 거리에 진열하고 그 위에 천금(千金)을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만일 누구든지 이 책에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선전했다. 이는 제후나 선비 및 빈객들을 맞으려 했던 것으로 이후 “한 글자만으로 천금의 가치가 있는 훌륭한 문장”을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용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국가 경영이나 회사 운영에 한 획을 긋는 아이디어 하나는 천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돈 주고 살 수 있어야 산업이 발전하고 나라도 흥왕할 수 있다. 지금은 구태의연해선 살 수가 없다. 날마다 새롭게 구일신(苟日新/진실로 날마다 새롭게 하라), 일일신(日日新/나날이 새롭게 하라), 우일신(又日新/또다시 새롭게 하라)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가만히 서 있으면 제자리가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다. 나 이외의 모든 이가 앞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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