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며 생활해도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돈
한국에서 집과 차를 다 팔고 가방 세 개만 들고 무작정 찾아온 미지의 땅 뉴질랜드. 누구에게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집을 판 돈으로 유학을 왔으니 실패라도 하면 돌아갈 곳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차로 한 시간 가량 달려 전도사님 댁에 도착했다. 전도사님 댁 바로 옆집에 방을 얻었으나 한 달을 기다려야 해서, 그동안 그 전도사님 댁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전도사님 댁은 기대와 달리 판잣집처럼 초라했다. 방 두 개짜리 좁은 집에서 두 가정이 지내기가 무척 불편했지만 그래도 당분간 지낼 곳이 있어서 감사했다.
한 달 동안 전도사님 가족들과 지낸 후에 집을 옮겼다. 방 두 칸짜리 집을 빌렸는데, 집이 너무 낡아서 곰팡이 냄새가 심했다. 축축한 카펫에서 침대도 없이 잠을 잤고, 과일도 제대로 못 먹는 생활이 이어졌다.
과일 가게에서 상한 과일을 싸게 팔기도 했는데, 이런 상한 과일을 잔뜩 가져와 성한 부분만 골라 먹었다. 그렇게라도 가족들에게 과일을 먹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앞으로는 이런 과일들을 사오지 말라고 했다. 쓰레기봉투 값이 더 드니 차라리 안 먹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동안 한국에서 편하게 살았는데 다시 시작되는 가난은 나와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게다가 신학 공부가 얼마나 길어질지, 뉴질랜드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알 수가 없어서 그릇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라 여행용 코펠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코펠이라도 일반 그릇만큼 튼튼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구멍 난 코펠 그릇을 닳고 닳도록 쓰다가, 결국은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누군가가 쓰다 버린, 조금씩 깨지고 이가 나간 그릇을 구해 와서 사용했다. 그야말로 나그네 삶이었다. 어린 아들이 먹고 싶다는 1불짜리 햄버거조차 사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아끼며 생활해도 돈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정말 심장이 녹는 것 같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사과에 붙은 상표 스티커를 떼다가 자기 공책에 열심히 붙였다. 그 이유를 물었다. 요즘 스티커 붙이기 놀이가 유행이라며 친구들은 모두 스티커 책을 갖고 있는데 자신은 5불짜리 스티커 책이 없어서 사과에 붙은 스티커를 공책에 붙이는 거라고 했다. 갖고 싶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스티커 북을 하나 사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나이에 반짝거리는 스티커를 가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신이 났을까? 게다가 이 녀석이 얼마나 재주가 좋은지, 제일 싼 스티커를 가져다가 값비싼 스티커로 바꿔 왔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부모로서 참 안타깝고 측은했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