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우리 집 소품가보 ‘접이부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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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보관되어 있는 소품 중에 가보(家寶)로 여기고 있는 물건이 있는데 이것은 장모님 지희순(池熙順, 1906~1984) 권사께서 물려주신 것으로 두 손바닥을 합친 크기 정도의 ‘접이부채’이다. 그 부채에는 서예가 이철경(李喆卿, 1914~1989, 아호: 갈물) 선생께서 그 어른 특유의 한글 궁서체로 써내려간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선생의 시 「청포도」가 적혀 있다.  

장모님이 잠시 우리 집에서 머무시던 1980년대 초에 장모님의 젊은 시절, 가까이 지내시던 지인 이철경 선생께서 서울 미아동 우리 누옥(陋屋)에까지 찾아오셔서 당신이 정성스레 제작한 이 ‘접이부채’를 장모님께 선물로 주신 것이다. 나는 그 현장에서 이 선물 ‘접이부채’에 얽힌 일화(逸話)를 직접 듣게 되었다.

이철경 선생께서 이육사 시인의 시 「청포도」를 쓰시는 과정에서 한 글자의 오자(誤字)를 쓰시게 된 것이다. 「청포도」라는 시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로 시작이 된다. 그 시는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로 이어지는데 이때 갈물 선생은 무심결에 ‘청포’를 ‘청포도’로 잘 못 쓰신 것이었다. 갈물 선생께서는 장모님께 이 부채를 전해주시면서 “이것은 작품으로 만든 것인데 오자(誤字)가 생겨서 작품은 될 수 없으니 형님께서 더울 때 부채로 사용하세요.”라고 하셨다. 

아내 유백란(柳白蘭, 1945~ ) 권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당시 「공주사범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장인어른 유증소(柳曾韶, 1906~1952)  선생이 사시던 「공주사범대학」 관사에서 이철경 선생댁의 온 가족이 함께 피난살이를 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당시 이철경 선생의 아들 가수 서유석(徐酉錫, 1945~ )과는 대여섯 살의 코흘리개 동갑내기 소꿉동무였다고 했다. 현재 LA에 사시는 큰 처남 유지식(柳池植, 1929~ ) 선생과 통화하면서 두 가정의 인연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장인어른이 개성 「송도사범학교」 재학시절, 이철경 선생의 부친 이만규(李萬珪, 1888~1978) 선생께서는 장인어른의 은사였으며 훗날 장인이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중에도 이만규 선생께서 「연희전문」의 교수로 계셨다고 했다. 1945년 해방직후, 장인 유증소 선생께서 「춘천여중」 교장으로 부임할 무렵, 거의 때를 같이 해 이철경 선생의 남편 되시는 서정권(徐廷權, 1910~1990) 선생께서는 「춘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셨다 한다. 그때 이철경 선생께서는 장인어른이 교장이시던 「춘천여중」의 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훗날 이철경 선생께서 서울 「금란여고」 교장으로 봉직하실 때, 나의 처형 유호식(柳湖植, 1936~1978) 선생이 「금란여고」의 음악교사로 근무했던 인연을 알게 되었다.

이철경 선생은 1914년 6월 3일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해 1989년 6월 14일 서울에서 76세를 일기로 소천(召天)하셨다. 갈물 선생은 선친이 교육자, 의사, 한글학자, 민족주의자였던 이만규 선생의 따님이었으며 동시에 전(前) 「서울고등학교」 교장 서정권 선생의 부인이요, 가수이자 방송인인 아들 서유석 등 3남 2녀의 어머니로, 40년을 교육자로, 60년을 예술가로, 수십 년을 여성운동가로 일인다역(一人多役)의 삶을 살아온 추앙(推仰)받는 모범여성이었다. 

그는 한편, 한글서예가로 남궁억(1863~1939), 윤백영(1888~1986) 선생 등과 더불어 한글궁체의 예술화 활동을 왕성하게 해왔고, 더불어 오늘의 한글서예를 정착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에게는 각경(珏卿)과 미경(美卿) 두 자매가 있었는데 세 자매가 모두 한글서예에 뛰어난 필재(筆才)를 발휘했다. 

갈물 선생은 1935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 1938년부터 「이화여전」 음악 강사와 「배화-이화-진명-경기」 등, 여학교 강사를 역임했고, 1960년부터 1979년까지 「금란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일찍이, 1948년 문교부 검인정교과서 검정위원과 서예교과서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갈물한글서회」를 창설했으며,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갈물 선생은 장모님께 “더울 때 부채로 사용하시라”는 말씀을 전하셨으나 장모님도, 그 사위 문 장로도 소품을 ‘가보’로 고이 간직해 왔는데 유난히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최근에 옛날 생각이 나서 그 접이부채를 다시 한 번 펴보게 되었고 근 반세기 전의 옛날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서 여기에 그 이야기를 기록하게 되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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