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욥의 고난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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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교회 새벽기도의 주제가 욥기이다. 새해 벽두부터 고난의 욥을 묵상하다 보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상서로운 기운을 묵상하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네요’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순간 ‘아니지, 고난 속에서도 끝내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욥을 본받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테니 새해 벽두부터 그런 좋은 말씀을 들고 새벽을 연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욥이 이유 없이 갑자기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원망하는 것이 바로 내 모습인 것을 깨달으면서 받는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예전에 읽고 대하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 욥의 원망도 이해가 되고 그 가운데서도 결코 하나님 손을 벗어나지 않는 그 대단한 믿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젊었을 때는 밉상으로만 보이던 세 친구의 강박이 어찌 그리 은혜로운지 모르겠다. 

신학적으로 해석이 맞든 아니든 정답의 문제를 떠나 이번에는 친구들의 항변이 진정으로 욥을 염려해서 어서 빨리 이실직고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사랑의 충고로만 들리는 것이 신기하다. 젊은 날에는 친구도 다 소용 없어 남의 고난을 보고 저렇게 잘난 척 하는 게 친구 맞아?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어떻게 생각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직 10장을 지나고 있으니 더 큰 고난과 항변이 이어지고 욥의 고난과 신앙심의 사투가 더욱 심하게 전개되겠지만 지금 같은 은혜를 계속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심경으로 대하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단체 일로 회원들이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어떤 사안을 두고 한쪽은 진실이라 하고 한쪽은 아니라 한다. 진실이라는 쪽이 증거를 대야 하는데 그 일이 있을 당시의 책임자에게 전했다고 하는데 그 당사자가 병이 깊은지 연락이 두절인 상태이다. 회원들은 양쪽이나 그 당시의 책임자나 모두 다 믿고 사랑하는 회원들이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되는 입장에서 막상 당사자가 연락두절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욥을 이해할 것 같다면서도 이 문제에서 판단하기 힘들다. 아직 여기까지인 것을,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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