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을 기억하며 한 가지 따뜻한 이야기를 여기 옮기고자 한다. 오래 전, 대도시 어느 국민(초등)학교에 6학년 1반을 새로 맡게 된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새 학기가 되어 자기학급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축이 있는 집~? 전화가 있는 집~? 텔레비전이 있는 집~? 피아노가 있는 집-? 손을 들어봐요” 그런데 [정수]는 한 번도 손을 들지 못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그런 것들이 집에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이번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라디오 없는 집?” 그러자 [정수]가 손을 들었다. 그러나 자신만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정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며칠 뒤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시기로 한 날, 가난이 부끄러웠던 [정수]는 집을 나와 이리 저리 배회를 하다 선생님이 가신 후,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며칠 후, [정수]네 집에 라디오가 생겼다. 큰 배터리를 라디오에 고무줄로 둘둘 묶어서 쓰는 성능이 꽤나 좋은 라디오였다. 엄마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샀다고 했다. 날아갈 듯이 기뻤던 [정수]는 그 날 이후, 날마다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라디오를 통해 남아공에 간 ‘홍수환’ 선수의 복싱 승리소식을 들었고, 좋아하는 노래도 마음껏 들었으며 밤마다 아름다운 사연을 속삭이듯이 전해주는 DJ 아저씨의 달콤한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자신도 다음에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 갔다.
[정수]는 라디오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정수]는 그 라디오가 담임선생님이 주셨다는 것을 몇달 뒤에서야 알게 된다. 선생님이 혹시라도 제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까 봐 어머니에게 [정수]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이제껏 그 사연을 한동안 숨겨왔던 것이다. 뒤늦게 담임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된 [정수]는 라디오를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선생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공기가 좋은 시골학교로 전근을 가시는 바람에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정수]는 선생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를 해 명문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에 입학을 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해서 방송국에 취직을 했으며, 꿈에도 그리던 PD가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맡게 된 [정수]는 그렇게 만나 뵙고 싶던 선생님을 40여 년 만에 만날 수가 있었다.
초로(初老)에 접어든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 [정수]는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선생님이 선물로 주셨던 라디오 덕분이었음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넙죽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훌륭하신 선생님과 착한 제자는 함께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승과 제자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다. 선생님은 “고맙다”라는 말씀이었고, 제자는 두 글자가 더 많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날 밤 [정수]가 선택한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이란 듀엣 가수가 불러 당시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던 명곡,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곡이었다. “험한 세상 물위의 다리처럼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게요. 당신이 외롭고 지칠 때 작은 느낌으로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내가 다 말려 드릴게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게요~”
가난했던 제자에게 몰래 라디오를 사줌으로써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신 선생님처럼 우리도 어렵고 힘든 이웃 청소년들을 위해 작은 다리가 되어 외로움과 슬픔을 씻어주고, 힘이 되어주어서 서로 서로 행복한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