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위대한 종교개혁가 칼빈

Google+ LinkedIn Katalk +

칼빈(J Calvin, 1509~1564)은 프랑스 출신이다. 처음에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신다는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1534년 개신교로 전향했다. 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했다. 칼빈은 원래도 강인한 체력이 아니고 건강하지도 못했다. 거기에 과도한 노고(勞苦)로 체력이 완전히 탕진되고 말았다. 말년에는 그의 서기(書記)가 한 줄 한 줄 받아 쓰는 그런 과정을 통해 기록이 되었다.

1540년 로마서 주석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썼다. 칼빈은 성경 주석의 천재였다. 칼빈은 특별히 다윗과 바울을 좋아했다. 26세 때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불후(不朽)의 명저 <기독교 강요>를 저술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찬탄(讚嘆)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그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예정 교리의 신학적 논리 전개는 심금(心琴)을 울려 주었다. 칼빈 신학은 ‘개신교 신학의 금자탑’이다.(스펄전 목사)기독교 교리를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기술했다.

젊은 20대 나이에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토록 깊이 있게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했다.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과 지혜의 은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순결한 교사였다. 장로 교회의 교리 정립과 위대한 개혁가(改革家)로 평가된다. 칼빈은 루터에게서 개혁 정신, 어거스틴에게서 신학적인 큰 영향과 깊은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구원의 확실성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변함없으신 사랑과 은혜에 달려 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한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 그리고 묵상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핏값으로 사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살라고 한다.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굴복할 것을 강조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居)하시고 통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자기 부인(否認)의 삶이라고 하겠다. 교만과 오만, 허영과 탐욕, 방탕과 사치 그리고 방종은 자기 사랑에서 나온다. 이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다. 그의 삶은 절제(節制)와 검소(儉素)였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인은 근신과 의로움과 경건함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라고 한다. 근신(謹愼)은 정직하고 검소하며 가난한 중에도 참으며 인내하는 것이다. 절제하는 것이다. 의로움은 정의를 수행하는 것이다. 경건함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칼빈의 개혁 정신과는 거리가 한참 멀리 있어 보인다.

이 모든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훈련이 필요하다. “푯대(Signpost)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해 달려 가는 것”이다.

개신교의 정통 개혁 교리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필독서이다.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칼빈의 개혁 정신이 새롭게 요구되는 시대이다. 교회는 인간의 천박한 종교심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사역의 도구인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성경을 제대로 아는 것은 필수이다. 무지한 열심과 분별없는 성급한 행동은 금물이다. 신앙은 위대한 전능자, 지혜의 총체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신 계시의 말씀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칼빈은 ‘오직 성경만으로’였다.

칼빈의 일생을 생각할 때마다,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다 쏟아주고 가신 주님을 생각한다. 칼빈도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한 점의 체력까지도 다 바친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생이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