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회자의 삶으로 본 신앙의 유산과 돌봄의 사회복지
한국교회의 진정한 스승과 지도자가 그리운 이때에 참 스승이요, 지도자이셨던 고 김광식 원로목사님께서 2026년 5월 9일 102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목사님은 102세의 긴 생애 동안 요양원에 머물지 않으시고 건강하게 생활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품에 안기셨다. 2026년 5월 13일 목사님께서 시무하시고 사랑하셨던 인천제삼교회에서 천국환송예배를 드렸다.
그 예배는 슬픔과 무거움만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찬양과 감사, 부활의 소망이 함께한 은혜로운 예배였으며, 마치 천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시는 듯한 기쁨과 환희가 있었다. 큰아들 김창일 목사는 아버지를 기억하며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사는 목회자가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가장 가까운 곳, 우리 가정의 아버님이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자녀가 아버지를 향해 “예수님처럼 사셨던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신앙의 평가와 인생의 결산이 어디 있겠는가. 고 김광식 원로목사님은 1972년부터 1995년 12월 31일까지 24년 동안 인천제삼교회를 시무하시며 교회를 든든히 세우셨다.
말씀과 기도, 심방과 사랑으로 성도들을 돌보셨고, 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귀한 기초를 놓으셨다. 목사님은 북한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신 후 평생을 복음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셨다. 은퇴 후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어려운 교회를 사례 없이 섬기시며 끝까지 주님의 종으로 사셨다. 또한 후임 목회자의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은퇴하신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셨고, 다른 은퇴 목회자들에게도 교회를 위하는 본을 보이셨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쓰셨고, 후배 목회자와 장로들에게도 겸손과 예의를 잃지 않으셨다. 서울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님이 인천을 방문하셨을 때, 숭의감리교회 이호문 목사님이 김광식 목사님을 “인천의 한경직 목사”라고 소개한 일화는 오늘 우리 후배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목사님은 전국경찰청 경목위원장, 인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한국찬송가공회 회장, 한국외항선교회 부회장, 전국은퇴목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시며 교회와 지역사회, 한국교회를 위해 넓게 섬기셨다. 또한 『목회의 실제와 이론』, 『지금은 몰라도 후에는 알리라』 등의 저서를 남기셨고, 별세 전까지 한국장로신문에 16년 동안 ‘예화 이야기’ 칼럼을 847회 연재하셨다. 성경적 관점에서 김광식 목사님의 삶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삶이었다. 목회는 직분이기 전에 섬김이며, 권위이기 전에 사랑이라는 사실을 목사님은 삶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목사님의 목회는 낮아짐과 섬김의 길이었다.
목사님은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할 때마다 전심으로 기도하셨고, 한 영혼과 한 가정을 귀히 여기셨다.
이것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오래된 돌봄이며, 오늘의 사회복지가 회복해야 할 인간 존중의 정신이기도 하다.
박용창 장로
<사회복지칼럼리스트, 제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