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잠은 곧 생명이요, 그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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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속담에 “잠이 최고의 보약이다”란 말이 있다. 이는 숙면을 통하여 우리의 교감신경을 안정시켜 근육의 피로를 완전히 회복시킨다. 그로 인해 원기에 활력을 넘치게 하는 것이니 이만한 보약이 또 어디 있겠는가. 보약 중에 최고의 보약이 아닌가. 옛날부터 널리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써 비록 짧긴 하지만 그 내용이 깨우침을 주기에 이를 속담이라고 했다. 이 속담은 우리의 인체가 얼마나 정밀하게 조직되어 있는 가를 잠을 통해 제시해주고 있다.
이 세상에는 정교한 과학 제품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인간 육체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 제작된 자동차는 만 삼천 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747제트여객기를 만들려면 삼백만개의 부품이 들어가야 하며,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데는 오백만 개의 부속품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면 사람의 몸은 아주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음을 본다.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정교한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10조(兆) 개의 세포조직과 25조 개의 적혈구와 250억 개의 백혈구가 우리 몸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때 건강한 육체로 삶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몸이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이 통한다는 것은 이처럼 정밀하게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걸어갈 때 206개의 뼈와 600개 이상의 근육과 힘줄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때 사람의 걷는 바른 자세라고 한다. 얼마나 놀라운 우리의 육체인가? 이런 글을 어느 잡지에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이 무수한 조직이 톱니바퀴처럼 하나같이 작동해야만 건강한 육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일들을 처리해야만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니 그 일을 감당하느라 우리의 몸이 얼마나 피로에 젖겠는가? 세상 무슨 의약품이 잠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의학이 발달한다 해도 숙면과 같이 회복시킬 수 없다.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성경 창세기다. 절대자는 낮과 밤을 창조했다. 그 의도가 무얼까? 뭇 생명들을 살려내기 위한 것이다. 낮은 활동의 시간이요, 밤은 잠을 통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낮과 밤이 존재하지 않았던들 인류가 오늘처럼 찬란한 역사를 이루었겠는가. 성경에 의하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암시해 주고 있을까.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에 그 힘으로 주어진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닐까? 그럴 때 모든 역사가 창출된다는 뜻이다. 필자가 기독교인이라서 창세기를 인용한 것은 아니다. 천지만물이 생존하는 원리를 밝혀 놓은 바가 성경 이 외에서는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은 모든 생물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그러하고 식물들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그 하나의 예로 봄철의 꽃 빛깔이 선명하지 못한 해가 있다. 그 이유는 무얼까? 원예를 전문으로 한 제자의 말에 의하면 지난해 겨울이 따뜻해 뿌리가 잠자는 시간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꽃 빛깔이 고우려면 한해 겨울에 10일 이상의 강추위가 이루어져야 뿌리가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은 뿌리에서 봄을 맞이할 준비를 계속 서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생물에게는 충분한 휴식이 아주 소중하다는 이야기다.

수면전문의사인 한진규 박사는 그가 쓴 『수면밸런스』에서 ‘모든 건강은 숙면에 있다’고 하면서 잠은 인생 전체에 걸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요소라고 했다. 특히 인간이 잠자는 동안에 우리 신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하여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 있다. 뇌 과학자들조차도 이에 이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뇌 지식만으로도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기에 현재 불면증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잠은 곧 생명이다. 생명에 활력을 공급해 주는 역할도 잠이요, 생체리듬을 정상화 시키는 것도 잠이며, 손상시킬 뇌세포를 재생시키는 일도 잠이니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에겐 귀한 잠이 있다. 최고의 보약인 잠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도 있다. 끝끝내 잠이 오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자야 한다. 동터오는 새날이 있기 때문이요, 찬란한 미래의 역사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재준 장로
<수필가 문학평론가·중동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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