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난주간을 보내는 성도들

Google+ LinkedIn Katalk +

아들이 운전을 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믿음이 뭔지 아주 쉽게 설명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믿음이란 다차원적이다. 가장 기초적인 개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본질은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것이지. 하나님의 마음, 그 사랑과 은혜와 약속을 받아들이는 거야. ‘내가 널 사랑해.’ 그러면 ‘네,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것이다. 우리는 ‘믿습니다!’ 하면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사랑을 수용하는 것이 믿음이야. 아무리 상대방이 사랑한다고 하면 뭐하니?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와 내가 연결되는 방법이지.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연결통로야. 퓨즈와 같은 거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뭘까? 다른 것이 아니다. 내 사랑을 받아달라는 것이지. 그래야 관계가 형성이 되는 거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수동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 이렇게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는 관계가 형성되는데, 여기서 그 사랑을 믿고 견디는 힘이 생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제는 힘들고 어려워도 그 사랑을 믿고 버틸 수 있게 되지. 그래서 버티는 것이 믿음이란다. 마지막으로는 되받아치는 것이 믿음이야. 믿음을 가지면 세상을 향해 받아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단다. ‘네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가 봐!’ 그러면 ‘무슨 소리야?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거든! 이 사건은 나를 빚어가는 것이거든! 그러므로 나를 미혹하는 사단아, 물러가라!’ 이렇게 되받아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능동성은 수동성에서 나오는 파생효과이지 본질이 아니란다.” 

고난주간의 주제는 십자가이다. 칼 바르트는 십자가 속에는 더블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내가 십자가에 죽을 만큼 큰 죄인이라는 것, 동시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체험에는 단계가 있다. 

첫째는 사실이다. 사실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행하신 모든 것, 그것이 사실이다. 사실이 맨 먼저이다. 둘째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체험이다. 체험이란 무엇인가? 사실에 대한 믿음의 결과가 체험이다. 

예금으로 말하자면 통장에 돈이 들어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 돈을 찾는 것은 믿음이다. 왜냐하면 그 돈을 인출하는 것은 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을 사용하는 것은 체험이다. 

우리는 믿음이 사실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믿음은 사실을 믿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 정확한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에는 항상 대상이 있다. 목적어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믿음은 있지만 체험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체험을 하게 되어 있다. 믿음의 성격을 보라. 수용하고, 버티고, 받아치다 보면 그것이 바로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과 믿음과 체험, 3가지 관계를 예수님의 죽음을 놓고 생각해보자. 고난주간에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금식하고, 여러 가지로 애쓰며 체험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나도 십자가 못박혔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죽는 체험을 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고백해보라.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고백해보라. 이것을 실천해보라. 그리고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보라. 그럴 때에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행동이 변하는 것이다. 체험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끔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작동될 때, 체험은 언제나 내 삶에 존재하는 것이다. 

황명환 목사

<수서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