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첫사랑, 화가 나혜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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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기운으로 여인은 거침없는 직구로 마음속 질문을 마구 던지고 있었다. “사랑해! 혜석이를. 난, 지금껏 누구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번도 해 본 적 없어.” 춘원은 오늘밤 술기운을 빌려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밝히고 있었다. 춘원에게도 이와 같은 남자의 숫기가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럼 지금까지 허영숙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안했단 말이야?” “응 그래!” “거짓말!”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정말, 그 말 믿어도 돼? 나에게만 처음으로 하는 말이란 말이지?” “그렇다니깐!” 

순간, 나혜석의 만면에 승리자의 우쭐함이 피어 내렸다. 이것이 나혜석의 진짜 승부기질의 참 모습인가. “잘 알겠어. 춘원! 그 말을 내가 믿고 접수 하겠어.” 그러면서 여인은 허리를 굽혀 춘원의 목덜미를 탁자위로 잡아끌어 당기며 자신의 입술을 남자의 입술위에 대고 힘있게 짓누르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내꺼야! 결혼따위는 필요치 않아. 우리는 연애만 하면 된다!” 여인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혜석은 만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서 울기 시작했다. “나 어떻게 해. 불쌍해서 어떻게 해. 나를 두고 뭐가 바빠서, 그리도 빨리 도망가나. 못된 놈, 미워 죽겠어! 엉 엉.”

죽은 첫사랑 최승우를 잊지 못해 지금 나혜석은 술취해 큰소리로 울고 있는 것이다. 이제 또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안고, 나혜석은 또 울어야 하나. 두 사람은 이젠 한 몸이 된 것처럼 서로 부둥켜 안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이러한 지난 날 나혜석과의 사랑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춘원의 망막을 스치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춘원은 계획대로 일본에서 탈출, 상하이로 망명했다. 상하이에 당도한 춘원은 ‘신한청년단’에 입단해 그곳의 동지들과 함께 모의를 하고 거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그러면서 춘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 주임직을 맡았고 또 임시정부에서 발행하는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후일을 기약했다.

또 춘원은 그 다음 해 도산 안창호의 흥사단에 입단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춘원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충무공 이순신과 도산 안창호 라고 했다. 그래서 춘원은 도산 안창호의 흥사단에 기꺼히 입단했던 것이다.

흥사단은 1913년 5월 도산 안창호의 주도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단체다. 흥사단은 8도를 대표하는 청년들을 포함한 25인의 발기인으로 발족했다.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을 지도 이념으로 해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 지부를 설립하고 실력 양성 운동에 힘썼다.

춘원이 평소에 갖고 있던 사상과 이념에 많이 부합되어 흥사단의 활동이 자신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한편 이렇게 해서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님은 오지 않고 들려오는 소식은 춘원이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다들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러한 소식을 경성에서 풍문으로 다 듣고 있는 허영숙은 더 이상 춘원을 기다릴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직접 상하이로 건너가서 춘원을 데리고 올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영숙은 곧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허영숙은 바로 가방을 챙겨 님을 찾아 상하이로 출발했다. 상하이 임정사무실에 도착한 허영숙은 출입하는 인편을 통해 춘원을 조용히 불러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허영숙을 보고 춘원은 몹시 놀란다. 첫마디부터 허영숙의 말투는 사랑의 여전사처럼 도전적이다.

“돌아갑시다. 당신은 지금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고 있어요. 또 재발하면 이젠 힘들어요. 빨리 귀국해요. 그리고 정치에 너무 빠지고 있어요. 돌아가는 국제정세 매우 좋지 않아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했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은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고. 지금은 때가 아니요. 후일을 기약해야 돼요. 그리고 나하고의 약속은 어디다 갖다 버렸어요? 나는 외로워 더 이상 살 수가 없소.”

“……” 춘원은 눈만 껌벅거리고 계속 듣기만 한다. 아무 대답이 없다. “귀국하면 당신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소.” 그제야 춘원이 약간의 반응을 보인다. “무슨 일?” “글을 쓰는 일들이오.” “글이라 했소?” “그래요. 글.”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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