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멋쟁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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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개척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의 독특한 사명의식이 있다.

성루교회는 한국의 척박한 땅, 유대땅 갈릴리 같은 목포도성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유일한 사명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시작되었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있으나 마나한 교회는 지양(止揚)한다. 이 세상에 이미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또 하나의 교회 숫자만 늘리는 교회를 세워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일종의 호기(豪氣)스러움이었다. 

이미 한국교회에 대한 좋지 못한 징후들이 나타났고 한국교회의 열심과 뜨거운 신앙심을 폄하하는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을 때였다. 한국교회의 열심과 뜨거운 신앙은 일단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한다는 양적부흥과 성장신화에 붙들려 있었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모아 양적부흥을 경험하면 다음 단계는 예배당을 최대한 크게 짓고 그 다음 열심은 교육관 혹은 선교관 짓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양관 혹은 기도원 그리고 나면 공동묘원 조성하는데 한국교회는 열과 성을 쏟는다는 한국교회의 치부가 드러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성루교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감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루교회라는 이름은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다. 교회가 가장 본질적으로 우선해야 할 점은 영혼구원이다. 

그런데 영혼을 구원하려면 영혼구원을 위한 방편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어려운 가정을 돕는 그것도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가정을 돕는 사역이었다. 그래서 3가정을 선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기특하고 대단한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대책없이 용감했던 담대함에 자랑스럽기도 하다. 

왜냐하면 도무지 우리 형편이 그럴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멋쟁이 하나님이셨다. 대책없이 시작된 긍휼사역 즉 장애우 소년소녀가장 가정을 섬기는 우리의 사역이 지금까지 한번도 위축되거나 후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훨씬 많았던 성루교회는 처음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시작했고 무에서 유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자라게 되었다. 성루교회에 없었던 것은 첫째 교회 건물이 없고 둘째 교인이 없고  셋째 강대상이 없고 넷째 피아노도 없고 다섯째 반주자도 없고 여섯째 교회 장의자도 없고 일곱째 마이크나 스피커도 없고 여덟째 교회차도 없고 아홉째 십자가 종탑도 없고 열번째 교회 간판이나 표지판도 없고… 모든 게 없었다. 사실 그러나 그 모든 없는 것 보다 더 큰 것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멋쟁이 하나님이셨다. 어제처럼 선명하게 생각나는 세 가정은 삼학도에 살았던 혜수네, 만호동 극심한 다리 장애를 가졌던 김*빈씨, 고등학생 가장 소연이는 아래로 여중생 한 명과 초등학교 남동생 한 명 세 명이 공공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성도들이 생겼고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긍휼사역에 조금씩 동참하게 되었다. 왜 교회가 이웃을 돕고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하고 또 하나님은 우리가 남을 돕고 섬길 때 더 풍성하고 놀라운 은혜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으로 성도들을 설득하고 양육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이런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도전했다. 

놀라운 것은 그때 말씀에 순종하고 긍휼사역에 동역한 성도들이 지금 모두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목회의 가장 큰 행복은 목양현장에 함께 하시는 멋쟁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진구 목사

<목포성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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