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뜨거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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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아서 그러는지는 모르나 알아듣는 것처럼 시늉이라도 하니 답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맞지 않아 심술이라도 부리기 시작하면 달래기가 힘들 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초조했다.

‘이녀석이 물장난을 좋아하니까 목욕을 시켜야겠군.’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으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몹시도 재미있어 하니 애보기가 쉽고 둘째로는 몸을 씻어 깨끗해지니 어미나 아내가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덕수는 목욕하기에 알맞은 온도로 물을 받아놓고 왕눈이를 번쩍 들어 천천히 물속에다 세웠다.

“어떠냐? 우영아 좋지?”

물은 왕눈이의 궁둥이까지 차올랐다. 처음에는 뜨겁다며 팔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를 않더니 시간이 지나자 슬그머니 제풀로 선 것이다.

“앉아! 뜨겁지 않아.”

“뜨거워.”

본인이 뜨겁다는데 덕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우영아 좀 있으면 안 뜨거울 거야. 천천히 앉아서 이 장난감 가지고 놀아라. 할아버지는 뉴스 좀 보고 올 테니까 알았지?”

왕눈이는 큰 눈으로 덕수를 올려다 보았다.

“우영아 여기에 오리도 있고 배도 있고 다 있으니까 가지고 놀아 알았지?”

그래도 대답 없이 쳐다만 보는 왕눈이에게 덕수는 눈웃음을 치고는 뉴스를 시청하려고 TV앞으로 갔다. 4당의 선거운동 얘기, 중국이 대만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얘기, 그리고 테러방지를 위한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얘기 등이 화면을 채웠다.

“하부지! 하부지!”

“하부지! 하부지!”

몇 번인가 불렀던 모양인지 왕눈이가 높아진 언성으로 불러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우영아?”

“뜨거운데…”

물속으로 들어선 지가 벌써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뜨겁다니…

“괜찮다니까 앉아봐 안 뜨거워.”

“뜨거운데…”

덕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뜨겁다는 말끝에다 데를 붙여서 치켜 올리는 말투가 너무나 귀여워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다니까 안 뜨겁다니까.”

덕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뜨거운데…”

말투가 여전하다. 덕수는 TV를 끄고 화장실로 살그머니 다가가면서 마치 멀리서 말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니까 안 뜨겁다니까.”

덕수는 말하자마자 재빨리 화장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왕눈이는 처음에 섰던 그대로 벽을 바라본 채 말을 하고 있었다. 덕수는 큰소리로 웃었다.

‘주먹만한 놈이 고집은!’

덕수는 옷을 훌러덩 벗고 목욕탕으로 뛰어들어 큰 어린이가 되었다.

“뜨거운데…”

그대로 덕수가 말소리를 흉내내자 왕눈이가 빙그레 웃었다.

“할아버지 좋지?”

“응!”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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