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밀라노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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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대제’(Great Emperor)라는 수식으로 부르는 제왕(帝王)은 세 사람이다. BC 4세기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젊은 영웅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AD 4세기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9세기의 프랑크 왕 샤를마뉴(Charlemagne)이다. 알렉산드로스를 빼면 두 왕은 기독교와 관계가 깊다. 샤를마뉴는 서기 800년에 로마를 방문하여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왕관을 받았다. 신성 로마 제국은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중세의 암흑기에 유럽에 기독교를 모태(母胎)로 한 제국이었다. 샤를마뉴는 당시 유럽 기독교회의 희망이었다.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는 EU(유럽연합)본부 건물 이름이 ‘샤를마뉴’이다.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는 그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급사(急死)하자 장병들에 의해 후계자로 옹립을 받았다. 그러나 황제 자리를 두고 전쟁이 벌어졌다. 밀비우스 다리(Milvian Bridge) 전투가 있기 전날 밤, 막사(幕舍)에서 잠을 자는데 콘스탄티누스가 꿈을 꾸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내일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깃발과 병사들의 방패에 십자가를 표시하고 전투에 나가라는 계시도 받은 꿈이었다. 막센티우스(Maxentius)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세계 역사를 바꾼 전쟁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5대 전쟁은 일반적으로 다음 전쟁을 말한다. BC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살라미스(Salamis) 해전, BC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그리스군과 다리우스(Darius)가 이끄는 페르시아 간의 이수스(Issus) 회전(會戰), BC 202년 로마의 스키피오와 카르타고의 한니발 사이에 벌어졌던 자마(Zama) 회전이다. 포에니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카이사르(Caesar)와 갈리아 부족 간의 말레시아 공방전이다. 마지막으로 ‘밀비우스 다리 전투’이다. 모두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평가다.

서기 312년 10월 27일이었다. 막센티우스의 19만 병력을 상대로 하여 콘스탄티누스의 4만 병력이 대승(大勝)을 거두었다. 전투가 벌어졌던 밀비우스 다리는 폭 8m에 길이 130m의 다리지만 세계 역사를 바꾼 다리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장군)의 지휘에 의해서였다.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 옆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지금도 서 있다. 

이듬해 313년 6월에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이 선포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신앙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앙은 각자의 양심에 비추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이미 로마 제국에 전하여진 기독교에 대해서 신앙을 인정하고 신앙을 깊게 하는 데 필요한 제의(祭儀)를 거행하는 자유도 인정했다.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 각자가 원하는 신을 믿을 권리를 완전히 인정한 것이다. 믿는 자에게, 백성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준다면 인정해야 마땅한 일이다. 예배와 제의에 참가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받았다. 창조주 하나님, 지고(至高)의 존재가 그 은혜와 자비로써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 바랐다.

신앙의 자유는 인권 존중의 기둥이다. 서구에서 18세기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계몽주의 사상이 출현해서 인권이 신장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서는 4세기에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절대적 영향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년간 재위(在位)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금의 터키 보스포러스 해안에 있는 이스탄불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여기에서 13년을 통치했다. 그 후 1453년 이슬람교도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황궁은 터키 술탄(Sultan, 이슬람 황제)의 궁전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Helana)는 기독교가 공인된 밀라노 칙령 이후 처음으로 326년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기도 했다. 아들로서 대제(大帝)는 어머니에게 깊은 존경과 애정으로 대했다. 베들레헴에 ‘주님 탄생 기념성당’, 겟세마네 동산에 ‘주님 기도성당’, 골고다 언덕에 ‘주님 무덤 성당’을 지어 헌당했다. AD 325년 니케아(Nicaea) 공의회를 주도하며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던 아리우스파(Arianism)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추방했다.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것은 대제의 큰 역할이라 하겠다. 콘스탄티누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켜준 것은 로마의 다신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일신교였다. 작은 시골 마을 나사렛 출신 갈릴리 예수였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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