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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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문이 열리기 무섭게 옆구리를 꿰차듯 하며 앞질러 들어가 잽싸게 노인석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노신사다. 앉을만한 나이다. 문제는 앞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질러 들어가는 날렵함이다. 그리고 앞에선 여자 노인쯤 아랑곳하지 않는 무신경이다. 요즘 자주 대할 수 있었던 또래 노인들의 양보에 오히려 겸연쩍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슬며시 그가 무뢰배 같아 보이려 한다. 다 이해한다 해도 앞의 사람을 밀치고 들어가는 것은 용서가 잘 안된다. 그것도 바로 나를 말이다.

순간 자신의 옹졸함이 무안해 얼굴을 돌린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다. 경건한 마음을 갖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절제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해야 하는 기독인들의 경건한 절기이다. 고작 지하철 자리하나 빼앗아 갔다고 그를 미운 마음으로 정죄하고 있는 옹졸함이 부끄러워야 하는데 마음이 산란할 뿐이다. 목사님의 생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자꾸 마음을 찔러 그를 응시하며 ‘그래 미워하지 말자 용서하자’ 하면서 속으로 주문 외우듯 하고 서 있는데 그가 벌떡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한다. ‘아니, 웬일?’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그 자리에 앉는 노인이 나보다 약간 젊어 보이는 게 아닌가.

순간 무뢰배가 괜찮은 노신사로 보이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가 저 노파보다 젊어 보였다는 것인가 싶으면서 마음이 봄눈 녹듯 부드러워진 것이다. 아무리 사람의 마음이 요변덕이라 해도 이럴 수가 있는가?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의 행동을 순수하게 선행으로 보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왜 나는 세워 놓고도 편안히 앉아있던 사람이 무슨 연유로 저 노파를 보고는 마음이 변했을까 궁금한데 물어볼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혹시 미모가?’ 하다가 속으로 헛웃음을 감추고 얼굴을 돌렸다. 외모에 관심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가슴 속 어딘가에 외모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나? 얼굴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이 스물거린다. 노파를 다시 쳐다보니 별로 뛰어난 미모가 아니어서 해설피 웃을 수 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목숨을 내어 놓으시는 엄청난 역사가 시작되는 경건한 절기 사순절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밖에 못 한단 말이던가.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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