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 수술의 성공은 ‘실로암(보냄을 받았다는 뜻)의 기적’이란 뜻으로 차츰차츰 교회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그 뒤 본격적인 시작장애인 개안 수술에 대한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기관지인 ‘기독공보’는 ‘사랑의 개안수술 캠페인’을 매호 크게 보도해 주었다. 전국 각처에서 오는 훈훈한 소식과 미주 지역을 비롯해 캐나다와 일본, 독일 지역, 혹은 중동 지역에 나가 있는 현장 선교회의 소식을 자세하게 실어 주었다. 호응도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독공보는 창간 50주년 기념 선교 캠페인으로 이 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사랑의 개안 수술 캠페인의 내용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우선 각 교회의 성도들이 성금을 모아 30만 원을 한 구좌로 해 시각장애인선교회로 보내오자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에서 성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일을 비롯해 개안 수술에 필요한 장비 구입이나 기계 설치 등 운영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수백만 원이나 보내오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안 수술에 성공해 눈을 뜰 수 있었던 시각장애인들은 상당수에 이른다.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해온 의료선교 사역의 보람을 이들이 광명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해 준 여러 성도님들과 교회, 그리고 뜻을 같이해 주신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아직도 눈을 떠야 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서 속히 눈을 떠서 볼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사랑의 개안 수술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 나는 시간있는 대로 부르는 곳마다 달려간다. 사랑의 개안 수술이 성공될 때마다 실로암 안과병원 온 직원들은 하나님께 기쁨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다.
실로암에 가서 씻음 받고 개안한 이천 년 전의 그 사역이 오늘 한국의 실로암 병원에서 계속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5-7).
시카고 시각장애인재활원 입학
나의 생애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내 머리를 스쳐가는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나는 1976년부터 시각장애인의 선교와 복지를 위해 해외 나들이를 하면서 국제사회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재활운동이나 복지사업에 관한 것들을 직접 알게 되었다.
1980년 시카고에서 목회하고 있는 강형길 목사의 추천으로 일리노이 정부에서 주관하고 있는 시카고 시각장애인재활원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과연 미국 사회 시각장애인의 형편은 어떠하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자립하며 재활교육 전반에 관한 정보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나는 시각장애인재활원에 입학했다. 시카고 시각장애인재활원은 미 전역에서 입학한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비롯해서 후천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입학하는 학교다. 특히 인생의 한복판에서 실명한 사람들 중에는 일류 사회의 경영인, 전직 국회의원, 비행기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동양 사람으로는 내가 그곳 역사상 처음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곳은 듣던 대로 지상 천국처럼 복지 시설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교육의 내용이나 구조도 완벽하게 짜여진 교육 방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곳에 온 시각장애인의 수준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지도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학생 다섯 명에 지도교사 한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