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Q] 바로의 장자(왕세자)가 출애굽 사건 시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실 때 죽었다는 어떤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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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재앙으로 바로의 장자(왕세자)가 죽은 흔적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출 12:29).

기제(Gizeh)에 있는 거대한 스핑크스와 관련된 신전(묘)에서 석비(stela)가 발견되었다. 거기에 신이 나타난 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Marmakhis 신이 여러 왕자 중 하나인 투트모스에게 보좌를 약속하는 말로 “나는 너의 아버지(신적인 후견인)다. 내가 산 자의 머리에 있는 땅(즉 애굽)의 나라를 너에게 줄 것이다”라고 해 ‘특별히’ 애굽의 왕위를 약속한 기록이 있다(Pritchard, ANET, p. 449). 이 왕자가 정상적인 왕위 계승자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다. 왕위를 물려받을 투트모스 4세의 형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합법적인 계승자가 있는데 이런 기록이 있다면 투트모스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하늘의 뜻이 개입했을 것이다. 하늘의 뜻이 형의 죽음을 수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출애굽 사건과 바로의 아들이 죽은 시기가 거의 일치하고 있어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 lpuwer 파피루스에 “파라오의 장자까지 죽였다”. ‘초태생의 몰살’을 언급하고 있어 같은 맥락에서 언급하고 있으나, lpuwer 파피루스 사본은 신왕국(람세스 2세 치세) 시기에 만들어 질 가능성이 크고 내용이 신왕국 시대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 기록은 출애굽 사건의 직접적 증거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제시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많은 장면에 애굽을 언급하고 바로 왕들이 나오며 장자의 죽음은 출 11:5-6, 시 78:51, 시 105:36 등에 나와 있다. 절대적인 황제 시대에는 자기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록할 리가 없다. 또 아직 고고학적 연구와 출토가 최근 20세기에 와서 시작해 아직 많은 자료가 없다. 예를 들면 이집트 수도였던 피람세스(비돔) 는 알려진 것이 없다가 1996년 나일 메드가 푸쉬팀이 삼각주에 세슘탐지기로 땅속을 스캔하고 해독한 결과 놀랍게도 도시의 거리에 저택 궁전까지 발견 피람세스를 찾았고, 피람세스 시민들은 3천 년 전에 이 찬란한 도시를 버리고 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조사 연구 중이나 발굴 등 아직은 매우 초기 단계이다. 그리하여 고고학 등 학술적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출애굽의 역사와 장자의 죽음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투트모세 3세는 어릴 때 하트셉투드가 섭정 또는 왕으로서 21년을 통치하고 죽었다. 그 후 투트모세 3세는 자신의 고모이자 계모였고 배다른 남매인 투트모세 2세의 왕비였고 여성군주 파라오였던 하트셉투드에 관련한 역사적인 자료는 모두 불태우고 없애버렸다고 한다. 투트모세 1세의 딸인 하트셉투드가 모세를 건져 올린 바로의 공주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의 장자로부터 모든 사람의 장자까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신 사건의 10번째 재앙에 대해 한 신학자는 급성 전염병에 의한 자연적인 동시다발적인 죽음으로 해석한다(Knobel, Hartmann). 그러나 분명히 이 재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심판 사건이다. 재앙은 분명히 예고되었고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바로의 장자로부터 정확히 처음 난 것에 국한되었으며 집마다 애굽 사람들에게만 심판하셨다. 밤에 죽음의 재앙이 발생해 공포가 더 심했다.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고 이 사건은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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