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 평화도, 내적 평안도 흔들리는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점점 더 전쟁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있다. ‘무력에 의한 억제’, ‘적에 대한 보복’, ‘편 가르기와 이념적 정당화’는 오늘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샬롬의 땅을 만들 수 없다. 샬롬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질서요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단지 인간적 평화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을 통해 이 땅에 참된 질서를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문제는 지금 이 시대가 그 말씀의 기준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콘텐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영상, 수많은 SNS와 알고리즘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보는 넘치지만 진리는 사라진 시대 속에서 말씀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유튜브 알고리즘과 포털 뉴스에는 민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갈급하지 않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말씀보다 프로그램, 트렌드, 감성적 자극이 중심이 되었다. 그 결과 혼란 앞에서 교회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조차 평화를 세우는 기준을 잃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복잡한 갈등 속에 있다. 정치적 분열, 세대 간 단절, 경제적 불안, 교육의 붕괴, 문화적 혼란은 우리 일상의 전면에 있다. 사람들은 지쳐가고, 믿을 것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린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외형은 여전하지만, 말씀의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있다. 성경을 읽는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 설교는 감동은 있을지언정 진리를 깊이 있게 전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
말씀이 사라진 시대는 필연적으로 혼란에 빠지고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잃는 순간 세상과의 구별도, 영적 생명도, 진리의 능력도 함께 잃는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말씀은 인간의 감정을 잠재우는 도구가 아니라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우리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평화는 인간의 타협이나 제도적 노력만으로 오지 않는다. 말씀 앞에 엎드릴 때 마음이 낮아지고, 분열 대신 용서가 시작되며, 진정한 화해가 가능해진다. 더 많은 프로그램, 더 세련된 운영이 교회의 부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성도 개개인이 말씀 앞에 엎드려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 교회는 다시 말씀 중심의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다시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이념적 논쟁을 넘어서,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물으며 진리로 사회를 분별하는 눈을 갖는 것이다. 교회는 바로 그 자리에서 평화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말씀 안에 뿌리를 내리고, 평화를 위한 기도와 행동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는 교회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 세상은 불안정하다. 진실보다 소문이 더 빠르고, 정의보다 감정이 우선시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 말씀을 전하며 살아야 한다. 시대정신이 아닌 성경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다시 살아나는 교회, 말씀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찬양하는 성도, 말씀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다음 세대, 그런 교회가 다시 세워질 때, 이 시대는 희망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