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우다 지금은 망우역사문화공원이란 이름으로 서울 동쪽의 명소가 된 이곳을 몇십 년 만에 찾아보니 감회가 컸다. 서울을 벗어나는 고갯길 곁으로 완만하게 오르는 산을 뒤덮은 신록의 숲 사이사이로 뚫린 산책로를 따라 온갖 봄꽃이 눈부신데 전망대에 서니 푸른 하늘 아래로 한편으로는 수도의 동부 시가지가 하얗게 펼쳐지고 다른 편으로는 경기도의 아기자기한 전원풍경이 멀리 북한강에 닿아 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공원관리소와 카페 건물 주위로 노천 쉼터가 있고 여기에 인근 주민들이 그룹을 지어 놀러 와서 각기 챙겨온 음식물들을 펼쳐 놓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운데, 나의 기억은 1960-70년대에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신 친족의 묘소에 성묘하던 때로 되돌아간다. 6.25 전란으로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곳에 잠들어 산은 거의 빈터가 남지 않았고 한식이나 추석에는 성묘객들로 망우리 온 산이 들끓을 정도였다.
1930년대 초에 일제 총독부는 도시 주변에 산재한 묘소들을 정리하면서 이곳 70만 평 산지를 공동묘지로 지정했는데, 해방 후 수도권 인구집중의 결과 197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에 완전 포화상태가 되었고, 시당국은 드디어 더 이상의 매장을 불허하면서 공원화 사업을 개시했다. 기존 5만 기의 묘소 가운데 건국공로자, 문화예술인 등 사회적 존경의 대상인물 80인을 선정해서 특별 묘역을 조성하고 일반인들은 유족에게 개장ㆍ화장을 권장해 점차적으로 공원의 모양을 갖추어 갔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는 280미터 높이의 산을 관통하는 두 개의 길이 열리고 계속해 편의, 조경 시설이 설치되고 2022년에 교육실, 전시실, 카페 등을 갖춘 중랑망우공간이 완성되었다.
이 역사문화공원에 독립운동가 유관순, 안창호, 오세창, 한용운, 김영랑, 문화 예술인 김말봉,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그리고 정치인 조봉암, 장덕수, 의학자 오긍선, 지석영 등 사표가 되는 인물들의 묘소들이 곳곳에 자리해 사이사이 남아있는 여러 봉분들과 함께 나라의 역사를 현대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곳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거나 구비구비 목재 데크 길을 따라 산책하는 방문객들은 하늘 아래 땅 위의 공간에 존재하는 자신이 지금 삶과 죽음의 사잇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본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장례가 화장을 택해 추모공원이라는 이름의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거나 일부는 수목장이나 산분장으로 마치기도 하는데, 과거 매장의 관습에 비교해 유족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뜻에 무슨 다름이 있을까? 우리의 신앙은 죽음을 살아있는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보다 우리를 맞아 주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하는 데에 그 의미를 찾기에 사후에 육신이 어떻게 처리되는가에 별다른 관심이 있을 수 없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인문학길’과 ‘사잇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내리며 여기 묻힌 민족의 거인들에 비해 아주 작은 존재인 나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지 궁금하다. 살아있는 동안 ‘더 점수를 따야만 되겠는데’하는 어리석은 욕심이 솟는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