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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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약속 지킨 삶, 명예롭고 기쁨으로 채워

명예박사 수여, 사회복지 사역 결실로 돌아와

삶 돌아보며 깨달은 사명… 다시 시작된 헌신

“… 그 가운데 사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기반 없이 시작한 일이라 부침이 심했지만, 위기 때마다 또 다른 길을 열어주셔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서 손잡아 주셔서 오늘까지 해왔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일을 앞에 두고 살아 보십시오. 세상의 성공은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특강이 끝나고 준비해간 3천만 원을 기부할 생각이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한 선교사들의 사진을 보면서 젊은 나이에 열악한 환경의 조선 땅에 와서 헌신한 그들을 생각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기부금을 5천만 원으로 올리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서 2천만 원은 송금하기로 하고 총 5천만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학생들의 호응 속에 강연을 잘 마쳤다. 얼마 후 정 총장이 서울에 올라왔으니 만나자고 해서 나갔다. 그런데 정 총장이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했다.

“저희 한일장신대학교가 성경학교로 시작해서 지금의 종합대학교로 발전하기까지 76년 역사가 흘렀는데 이제야 교과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서 처음으로 박사학위 과정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신학, 사회복지학 명예박사를 수여하기로 정하고 대학원 위원회와 교수회의에서 논의했는데, 장로님께 명예 사회복지학 박사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놀라 손사래를 치자 정 총장은 “사전 조사를 충분히 했는데 여러 분들께서 장로님이 우리나라 기독교 사회복지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추천해 주셨다”면서 학위를 받을 것을 청했다. 소망교회 김지철 담임목사님도 추천을 하셨다고 했다.

정 총장은 그 뒤로도 두 번 더 서울에 올라와 내게 허락을 구했다. 연거푸 거절하면서도 고민이 됐다.

‘내가 과연 사회복지 분야에서 역할을 한 것이 있는가?’

그동안 교단과 연합사업에 전방위로 참여하긴 했지만 특별한 분야와 내용을 따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차분히 되짚어봐야 했다. 사회복지 분야와 관련된 일이라면, 하남시에 장애인 교회를 두 곳 짓는다고 해서 건축비 전액을 헌금할 일 정도가 떠올랐다. 따져보면 장로교 복지재단(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이사장직을 맡았던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그때 전국 87곳의 복지시설을 세우고 운영하며 전문인 양성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보람된 일로 기억돼 있었다. 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봉사부장을 맡았을 때 이승열 목사(총회 사회봉사부 총무)와 함께 교단 사회봉사 사업에 매진했던 일도 생각난다. 소망교회에서 한 일 중에서도 아프리카, 중남미,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몽골, 중국 오지, 북한 등을 다니며 교회를 건축하고, 우물을 파고, 학교를 세우고, 보육원들을 세웠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정리해보니 내가 했던 많은 사역이 사회복지 분야에 해당됐다. 어쩌면 평생 그 분야의 일을 열심히 해온 셈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학위를 받는 일에 결심이 섰다.

2008년 2월 15일 한일장신대학교 신학박사 ‘명예 사회복지학 박사’ 수여식에 참여했다. 박사 가운을 입고 박사모를 쓰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한일장신대학교 동문이 됐다. 내가 한 일에 비해 큰 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명예’를 명예롭게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뒤로 뭔가 숙제를 다 못한 것처럼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오래전부터 막연하게나마 마음속으로 ‘시무장로를 은퇴하는 시점(2009년 12월 27일)까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일을 할 때가 지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몇 달 후, 나는 시간을 내 정 총장을 다시 찾아갔다.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로 자꾸 학교에 관심이 갑니다. 도움되는 일을 하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내 말에 정 총장은 “도움될 일이라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수도 없이 많지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정 총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가 도서관을 다 지어놓고 헌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10억 원을 기부해 주세요. 장로님 성함으로 헌정을 하겠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1억 원도 아니고 10억 원이라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액수가 아니었다. 굳이 마련한다면 재산을 상당 부분 처분해서 만들어야 할 액수였다. 순간적으로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곧 ‘가진 것을 정리해서라도 이 일을 감당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집에 가서 상의를 해보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왔다.

아내는 그동안 대부분의 작은 일들에 있어서는 내가 결정해놓고 동의를 구하면 찬성해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워낙 큰 액수가 걱정이 됐다. 정 총장을 만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듣고 있던 아내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 자리에서 “좋아요”라고 동의해줬다.

나는 바로 정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기부를 약속한 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잘 지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2008년 말 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파산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주식, 증권, 부동산 할 것 없이 모든 자산 가치가 반토막 난 것이다.

기부하기로 약속한 날은 다가오는데 대책이 없었다. ‘이야기 나왔을 때 바로 할걸’ 하면서 후회를 하기도 했고 약속 날짜를 연기해볼까도 했다. 아내와 상의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하나님께 약속한 일이니 꼭 해야지요. 어떻게든 해보세요. 저는 당신이 하자는 대로 따를 거예요.”

이 말에 결심을 한 나는 노후 대책으로 가지고 있던 은행 펀드를 정리했다. 20억 원 펀드 자산이 10억 원으로 줄어 있었다. 약속된 날짜인 2009년 4월 17일에 10억 원을 송금했다. 돈이 빠져나간 통장을 보자 내 마음도 하늘을 날 것처럼 가벼웠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부했다기보다는 ‘하나님과 나와의 숙제’를 완성하는 의미가 더 컸던 것이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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