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함께하는 행복한 노년] 가장 가까운 우리 안의 선교지

Google+ LinkedIn Katalk +

북에서 피난 내려와 50여 년을 한 교회에서 헌신하신 장로님과 권사님 내외가 계셨다. 그 분들의 삶은, 말 그대로 ‘신앙과 교회를 위한 삶’이었다. 예배와 기도, 봉사와 헌신, 십일조는 물론 감사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작정헌금, 절기헌금까지 교회를 위해 바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교회의 크고 작은 경조사마다 빠짐없이 참여하며 헌신했지만 정작 본인들의 노후를 위한 연금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불평이 없었다. 오히려 더 많이 드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어느 날 권사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자녀들은 있었지만 모두 타지에 살고 있었기에 장기적인 간병이 어려웠다. 결국 80이 넘은 장로님께서 홀로 권사님의 병간호를 도맡았다. 그런데 장로님마저 빙판길에 미끄러져 대퇴부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게 되었다. 필자는 심방을 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와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교회는 그분들을 돌볼 시스템이 거의 없었고 관심을 가지지도 못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주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라고 전한다. 그토록 교회를 사랑하고 섬겼던 이들이 외롭게 병상에 누워 있는 현실 앞에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끝까지 사랑하고 행복하게 천국 갈 수 있는 교회는 진정 어디에 있나?” 

이 질문은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와 맞닿은 간절한 외침이다. 교회는 더 큰 성장을 말하기에 앞서 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교회 안의 수많은 손과 발을 자처한 교인들의 삶을 돌봐야 한다. 성도들의 헌신에 대한 기억은 단순한 감동이나 감사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교회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인 성도들의 헌신의 무게를 교회는 같이 짊어져야 한다. 그들이 교회를 위해 그러했듯이 말이다. 더욱이 그 길은 언젠가 교회 성도 모두가 걷게 될 길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우리에게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는다. 바울은 이 요청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믿었다’고 고백하며, 마게도냐로 향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게도냐인의 외침’이 들린다. 그것은 병상에서 눈물 흘리며 외치는 외로운 손짓이다. 하나님은 이미 한국교회에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을 풍성히 주셨다. 세계 선교 2위라는 타이틀 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우리 교회 안의 연약한 이들을 어떻게 돌보며 섬기느냐이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 끝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가장 가까운 예루살렘, 곧 우리 교회 안의 노인 성도들이다. 평생을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그 분들이 이제는 교회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말하는 선교와 부흥은 빈 수레에 다름 아니다. 

지금 교회는 성도들의 감동적인 간증 스토리에 기댈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제도적으로, 실제적으로 노인 성도들을 어떻게 돕고 지지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당회는 결단해야 하고, 성도들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진짜 선교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다. 

강채은 목사

<사랑교회, 前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사무총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