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여정] 지워지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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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혈족이나 지인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런 얘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나와 인연이 있거나 또한 어떤 관계로 어울린 주변사람들을 서로 묻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아! 그 사람은 작년에 혹은, 몇 년 전에 무슨 병으로 어떤 사고로 이미 고인되었는데요’하는 얘기들을 들을 때면 순간 잠깐의 기도로 명복을 빌고 나면 그날은 온종일 우울한 날이 된다. 특히 나와 서로 각별히 아는 사이거나 돈독한 인연을 가졌던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참담한 생각으로 종일 서성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때문인지 이즈음 들어 크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는 무미건조한 날이 무척 많아진 것 같다.

어쩌면 나이 탓이요 큰 목표가 없어진 말하자면 모든 일에 매너리즘에 빠진 기분 탓이리라. 그래서 모두들 인생을 날마다 재충전하며 자기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며 고인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새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는 시기가 지금의 나이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은 식생활 문화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로 우리 인간 수명도 괄목할 만큼 연장되었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자못 왜소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나를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기회도 가진다.

어느 정도 주검 앞에 초연한 신앙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 인생을 하나의 자연과 같다고 했지만 잉태하고 탄생하고 소멸해 가는 과정의 순리 앞에 우리는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수명은 겨우 백살 정도인데 반해 거북같은 미물도 삼백년 이상의 수명을 갖고 있고, 더구나 나무들은 천년을 넘게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특히 지능과 재능이 발달해 마음을 조절하며 감정을 아는 인간의 수명이 이토록 짧은 원인이 뭘까 생각하다 문득 인간들이 갖는 욕심과 소유욕, 그리고 명예와 권력욕에 대한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神)은 인간에게 감정과 감성을 주어 기쁨과 슬픔과 순간의 만족을 터득하는 과정과 의미 있는 생활과 관찰을 주어 더욱 발전하고 부흥하는 성취욕과 묘미를 함께 주었지만, 영리한 재능을 개인의 일시적인 영달과 이익과 그리고 환락과 한없는 권력과 명예와 소유욕도 함께 줌으로써 단명의 원인제공을 공유하게 한 것이다.

살아 있을 때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한순간 뜻과 즐거움과 자기를 지탱해 주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죽음을 앞에 두거나 죽고 나서는 그 무슨 소용이 되며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해볼 때 우리는 늘 죽음을 예비해 가며 살아가야 하는 범위와 한정된 영역 안에서 내일을 모르는 사람을 살아가는 아슬한 존재이기도 하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인간의 한계는 어떠한 철학적 명제를 내세우더라도 우매한 짐승이나 거의 지능 지수가 없는 하등동물이나 대자연과 무엇이 다르랴. 요즈음도 신문 지상의 부고란을 읽거나 길가다 장의차를 볼 때마다 마음 숙연해지며 슬픔에 잠긴다. 저분은 어떤 삶을, 어떤 인생을 살았으며 무엇을 목표로 사신 분일까 하는 의문점으로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때마다 아직은 그래도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 주신 주님의 은총에 무한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인생을 결코 헛되지 않게 보람과 뜻을 간추린 성경의 말씀에 더욱 충실해야겠다는 마음 다짐을 하며 무엇보다도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습관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죽음의 순간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주위를 소홀히 하는 데서 혹은 사소한 일들의 정리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촌음도 아껴 쓰며 하루를 일년처럼 사는 결코 낭비하지 않는 시간을 자신보다 더욱 못한 주변과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도움으로 더불어 사는 인간애를 베풀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려 애를 쓴다. 그리고 어떤 불가항력의 일이나 예기치 못한 수난의 순간을 맞을 때마다 마음을 더욱 편하게 가지려 애쓴다.

안정된 마음 안에 곧고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그 안에 정답이나 모범답안을 찾을 수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한번은 이승을 하직한다는 만고의 거역할 수 없는 진리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 내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재의 삶을 보다 보람 있고 뜻 깊게 인생을 다하는 날까지 이 세상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게 하늘이 주신 최상의 해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도 신문지상에 광복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하신 분의 부음을 듣는다.

순간의 기도로 그분의 명복을 빌며 내 마음가짐을 초연해지려 애쓴다. 산자와 죽은자의 그 차이는 일각의 한순간이지만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사랑과 봉사로 최선을 다했는지가 삶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 차이에 따라 온유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는 자가 정녕 이 세상에서 축복받은 자일 것이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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