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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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칸센 열차 속의 진풍경 (2)

나는 김 장로님께 “훌륭한 기계를 기증하셔서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 형제 자매들이 수술을 받고 재활 훈련까지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운 뜻을 전했다. 그리고 나서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이종선 장로님께 “실로암 안과병원을 위해 좋은 일 한번 하세요”라고 용기를 내어 간청했다. 이 장로님은 “그러지요” 하면서 선뜻 수술 기계 한 대를 기증할 뜻을 내비치셨다.

그 순간 나의 눈에서는 감사의 눈물이 핑 돌았다. 신칸센 기차 안에서의 모든 부끄러움과 고생스런 여행으로 얻은 어깨와 팔다리의 통증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일의 특별헌금도 감사히 전달받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귀국 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장로님이 수술 기계를 기증하겠다는 소식을 어서 속히 실로암 안과병원 가족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다.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모습을 그릴 때 ‘체휼하는 그리스도’란 이미지를 부각시킨 점을 내가 체득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체휼한다’는 말의 영어는 ‘동감’이라는 뜻인 ‘sympathy’이다. ‘sym’은 ‘with’ 즉 ‘함께’란 뜻이고 ‘pathy’ 는 ‘passion’ 곧 ‘열정’이란 뜻인데 ‘sympathy’란 합성어는 ‘동감한다’ ‘동정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어로 ‘체휼(體恤)’이라고 번역된 그 말은 참으로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몸의 긍휼’이라는 직역으로는 그 뜻의 이미지를 제대로 나타내기에 어설픈 느낌이 든다. 체휼이란 한자어는 고통이나 아픔이나 긍휼 등을 몸으로 나눈다는 ‘고통의 분담’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든 선교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몸으로 함께 동참하는 고난의 동참이란 연대 의식을 깊이 깨달아야 될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온 선교의 여정은 그리스도의 체휼하시는 사랑의 권면이 없었다면 도저히 넘을래야 넘을 수 없는 험난한 길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순교할 각오로 떠나라

때는 1987년 1월 24일. 그날은 한국의 고유 명절인 음력 설날이었다. 서울의 상가는 철시했고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즐거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던 날이었다. 그날 정오에 나는 일본을 방문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말에 바쁜 생활 속에서 무리를 했던지 나는 흉통 감기에 지독한 몸살까지 겹쳤다. 좀처럼 감기에 감염되지 않는 체질인 내가 일단 감기에 걸렸다 하면 다른 사람보다 몇 갑절 크게 앓았다.

‘이러다 예정된 일본 한인교회 집회도 못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1월 20일경 오한이 나는 통에 주사까지 맞고 감기약을 복용했지만 무서운 독감은 섣불리 물러서지 않았다.

새벽 3시 40분, 괘종시계가 울렸다. 한 번 약속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며 일어나 보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흔들리고 다리까지 후들거리면서 귀에선 ‘앵’ 하는 소리까지 나는 것이 아닌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머리를 벽에 대고 있으려니 온몸에 힘이 빠져서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나는 잠시 누웠다가 다시 눈을 뜨니 5시 30분이었다. 손가락 하나의 무게도 감당 못할 무기력함을 느끼며 동경교회 김군식 목사님께 전화 다이얼을 돌리려는 순간 내 가슴을 때리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냐? 그렇다면 순교하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 아니냐?”

다이얼을 돌리려는 나의 손은 뻣뻣하게 굳어 왔다.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으면서도 일신의 괴로움을 핑계 삼아 요나처럼 다시스 행을 꿈꾸었나이다. 주님, 죽더라도 가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걸다 말고 펑펑 울었다.

하마터면 나는 그리스도의 체휼하시는 사랑을 외면할 뻔했다. 우리가 전생애를 바쳐 사랑할 분은 주님 한 분밖에 없다는 고백이 내 입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굳은 결심을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유성만, 양운국 두 장로님이 나를 전송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던졌다.

“오늘 설인데 두 장로님은 공항 대합실에서 설을 맞고 계시군요”

“그러시는 목사님은 설인데도 비행기를 타십니까?”

그 말에 좌중엔 웃음이 터졌다. 찬바람이 몸 속을 파고들었다. 온 몸의 마디마디가 시큰거리고 쑤시면서 나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냥 주저앉고 싶어졌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 해도 나의 온몸은 불을 지피듯이 열기가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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