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하나님! 우리는 얼마나 배타적이어야 하며, 또 얼마나 포용적이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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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진리 선언이자 가장 넓은 포용의 메시지이다. 복음은 한편으로는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다’라고 선포함으로써 진리의 배타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통해 포용성 또한 품고 있다. 이처럼 복음은 진리의 배타성과 포용성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그 우선순위를 논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

우선 복음의 본질은 진리의 배타성에 근거하고 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단순한 격언이나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한 말씀이다. 다른 어떤 종교나 사상도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의 배타성은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배타적인 진리 안에는 놀라운 포용성이 함께 담겨 있다. 복음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로마서 10:13)고 선언한다. 인종, 언어, 계층, 과거의 죄악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열린다. 이처럼 복음은 한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열린 초대이며, 모든 죄인을 향한 사랑의 손길이다.

그렇다면 복음의 포용성과 배타성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 이는 단순히 수용성과 배타성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복음의 포용성은 진리의 배타성 안에서만 가능하며, 오히려 배타적 진리가 있기 때문에 포용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가 상대적이고 구원의 길이 여럿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복음의 능력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선교와 전도의 실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명령을 받았고, 이는 복음의 포용성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전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명확한 기준 안에서만 구원이 성립된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배타적인 진리 위에 세워진 포용적인 초대이다. 진리의 배타성이 우선하며 그 진리 위에서만 포용성은 의미 있고 유효하다.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성경은 그 조화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혼합주의(에큐메니칼 등)나 다원주의가 만연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복음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붙들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만이 길이며, 누구든지 그 길로 나아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위대한 진리이다.

오늘날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절대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복음의 능력을 지키기 위함이다.

최교학 장로

<영주노회 장로회장, 영주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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