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믿음] 8.15 광복의 기쁨과 오늘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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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막강한 해군함대를 이끌고 하와이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하와이 진주만을 무차별 포격했습니다. 폭격으로 격침할 수 없는 항공모함은 자살 특공대가 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갑판에 내리꽂혀 격침시켰습니다. 이로써 미군은 큰 피해를 입었고 일본군은 승리를 환호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군을 지휘했던 야마모토 제독은 본국으로 귀국해 침울한 얼굴로 우리가 잠자는 사자의 얼굴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렇게 일본의 도발로 시작된 대동아전쟁은 4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미국으로부터 두 번의 원자폭탄 피격을 받았고 이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폭으로 즉사한 사람만 20여만 명이 넘었으며 징병으로 끌려간 한국인도 4만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일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칭 신이라던 히로히토 천황은 항복하고 말았으며 그로부터 6일 후 우리나라는 일제의 지배로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습니다. 국내외에서 많은 애국자들이 조국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힘썼지만 정작 우리에게 독립과 해방을 준 것은 미국이었고 미국의 원자폭탄에 의한 일본의 패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광복을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 알리소서/하나님이시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셀라) 아멘.(시편 67장 1절~4절)

광복 후 우리나라는 친일과 반일의 문제로 혼란에 빠졌고 기독교도 신사참배 여부에 따라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 이념을 표방한 북한의 남침으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3년 이상 계속된 동족 간의 전쟁으로 모든 국토는 초토화했고 피바다를 이뤘습니다.

준엄한 하나님의 징벌이었고 그릇된 공산주의에 대한 산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우리나라에 긍휼을 베푸시고 축복하셨습니다.

6.25 당시 한국전쟁 파병국은 미국을 비롯해 16개국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들이었고 전후 지원 국가들과 기독교 국가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간접적으로 전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은총입니까?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인권탄압으로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월남전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고, 1970년대에는 수많은 토목, 건축, 기술자들이 열사의 나라 중동으로 진출해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아파트를 건축했습니다.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주택을 개량하고 농지정리를 해 다수확농법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기치 아래 산아제한 운동을 펼쳤고 전국적으로 뜨거운 교육열이 확산되었습니다. 도시에는 수많은 공장이 세워지고 농촌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대거 이동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물품들이 세계시장을 점령해 나갔으며 전국 곳곳에서는 교회와 기도원이 많이 세워졌고 기독교 인구는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늘어났습니다.

1973년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초청 집회가 여의도광장에서 있었는데 100만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집결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1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축복입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녕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생각은 자기주의에 입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자국을 위한 헌신의 정신을 발휘합시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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