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믿음으로 계승하라 (창세기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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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권한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계승된다.

우리는 흔히 장자라 하면 단순히 먼저 태어난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었지만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택하셨습니다. 이삭의 장자는 에서였지만 그는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고, 하나님은 축복을 사모한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혈통이 아니라 믿음을 보십니다.

프랑스 문학가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장발장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순간을 “사랑과 은혜의 한 빛이 그의 영혼을 비추었다”라고 묘사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혈통과 과거는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새로운 은혜를 붙잡는 믿음이 장발장을 새로운 인생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출신보다 믿음이, 과거보다 순종이 장자의 권한을 이어가는 기준입니다.

야벳과 아스그나스, 변방의 중심이 되다

창세기 9장 27절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이것은 노아가 셈에게 한 축복의 말입니다. 셈의 자손들이 특별히 종교적이고 영적인 축복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셈 계열은 선민으로 택함받았으며(출 19:5, 신7:6-11),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 계열에서 탄생됨으로써 입증됩니다. 야벳의 후손도 결국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실제로 야벳의 장손 아스그나스는 고대 코카서스 지역의 조상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비롯해 동유럽과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럽을 ‘아스그나스’라 부르고, 전 세계 유대인의 80% 이상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불립니다. 족보와 세계사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실제 역사로 드러났다는 증거입니다.

김형준은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신앙』에서 “우리는 약속을 따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갑니다. 믿음의 길은 개척의 길입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믿음으로 헤쳐 나가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힘입니다. 신앙이 없는 삶은 그저 무의미한 반복일 뿐입니다.

아스그나스의 후손이 믿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 민족의 역사는 새로운 의미를 얻었습니다. 언약의 장막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역사적 증거,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많은 이들이 기독교의 시작을 로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AD 313년이었습니다. 그보다 12년 앞서 AD 301년,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어서 AD 337년, 조지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변방일 뿐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 땅이 복음의 첫 열매가 맺히는 자리였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장자의 권한은 결코 한 혈통이나 민족에 갇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든 자에게, 순종으로 응답한 자에게 계승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갈 3:7)고 선포했습니다. 결국 장자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 인류 전체에게 확장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것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장자의 권한은 교회 안에서 오래 다닌 경력이나 직분의 연차로 계승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보십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남이냐 차남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하는 자녀가 참된 장자가 됩니다. 사회에서도 출신과 배경이 아니라, 진실과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이가 하나님의 눈에 장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장자의 권한은 가볍게 여기면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것처럼 우리도 말씀과 예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어느새 그 권리를 놓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믿음을 붙들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장자니라”(출 4:22). 아르메니아와 조지아가 산 위에, 깊은 동굴속에 수도원을 세워 믿음을 지켜낸 것처럼, 우리도 가정과 교회, 직장 속에 하나님의 장막을 세워야 합니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자신의 일을 다하는 것 즉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수행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영웅은 드러나지 않는 순간에도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장자의 권한을 전수하는 길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묵묵히 기도하고, 예배를 세우고, 말씀을 지켜내는 일상 속 순종입니다. 그것이 다음세대가 믿음을 계승하는 길을 열어준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혈통만을 자랑하며 살겠느냐, 아니면 믿음으로 장자의 사명을 감당하겠느냐?” 이 부르심 앞에서 우리의 대답은 분명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계승하겠습니다.” 

김인해 목사

<목포 호산나교회, 한일장신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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