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바꿔 타야 하는 어려움은 적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들의 무관심과 불친절은 나를 끊임없이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그만 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난감했던 나는 지나가던 미국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그분은 선뜻 짐 찾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그 자리에는 아무 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몇 시간에 걸쳐 여기저기를 알아보는 동안 밤이 되었다. 기진맥진해 있는데, 모 호텔에 짐이 보관되어 있다고 연락이 와서 다행스럽게도 찾을 수 있었다.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계획대로 다음날 아침 뉴욕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토론토에 눈이 많이 내려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항에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를 다 보내고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탔으나 역시 눈이 계속 내리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공항에서 계속 기다리다가 오후 늦게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갈 수 있었다. 피곤에 지친 상태였지만, 토론토에 있는 시각장애인선교회 회원들의 환영을 받고 정성껏 마련한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참으로 흐뭇한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필요한 기계를 요청했을 때 기꺼이 기증해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순간 모든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조건 없는 사랑
그곳을 떠나 다음은 시카고로 가게 되었다. 나의 오랜 친구이자 동역자인 강형길 목사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맞이해 주었다. 강 목사 댁을 숙소로 정해 놓고 며칠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 시카고 제일연합감리교회 권사인 윤충섭 권사 부부를 소개받았다. 그분은 실로암 안과병원에 대해 신문에서 읽었다고 하면서 매우 호의적인 관심을 보여 주었다.
얼마간의 대화가 오고 가던 중 개안 수술하는 데 없어서 안 될 기계인 오큐시스템(4만 달러)을 기증하기로 약속해 주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 기계는 잘 사용하고 있고 쓸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그 당시 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나 은행에서 빚을 얻어 이 기계를 기증하시고 2년이 넘도록 그 빚을 갚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실로암 안과병원 후면에 있는 대지에 ‘실로암 빛의 집’을 세우라고 3만 달러를 보내 주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일인지 모른다.
또 다른 감사한 일이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시각장애인 형제 자매들에게 빛을 주기 위해 같은 시카고 지역에서 변성엽 교수를 모시고 자선 음악회를 열었다. 어느 토요일 밤 10시 30분에 음악회를 끝내고 우리 일행은 인디아나를 향해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때 도병일 목사와 성도들이 많은 수고를 해 주셨다. 우리 일행은 밤 11시가 넘어 출발해 목적지에 새벽 4시 30분에 도착했다.
교회에서 마련해 준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눈을 조금 붙이려 하니 목사님, 집사님, 선교회에 관련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며 잠을 깨웠다. 그때 잠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아침 7시부터 시작해 밤 11시까지 사역은 계속되었다.
그 뒤 시카고 한미장로교회에서 자선음악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설교 중에도 너무 피곤해 마치 자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의 육신은 잠을 잤지만 성령께서 대신 말씀해 주셨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이 귀한 일을 적극 도와주시고 나를 위해 운전해 주신 이강석 장로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때뿐만 아니라 내가 시카고에 갈 때마다 조건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의 발 역할을 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