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본래 감사의 계절이다. 들판의 곡식이 익고, 나무마다 열매가 맺히는 이 시기는 수고의 결실을 거두는 기쁨의 때이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베푸신 은혜를 헤아려보는 신앙의 절기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현실 속에서 ‘감사’라는 단어는 점점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 감사는 SNS의 인사말처럼 가볍게 흘러가고 삶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믿음의 방향이며,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앙의 본질이다.
진정한 감사는 단순히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섬김으로 이어질 때 완성된다. 성도의 감사는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이지만 수평적으로는 세상 속에서의 사랑과 나눔으로 드러나야 한다. 다시 말해 감사는 ‘예배당 안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언어’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섬김의 회복’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교회가 사회 속에서 신뢰를 잃어가고, 세상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이유는 교회가 더 이상 ‘섬김의 공동체’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본래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요, 아픈 이웃을 품는 피난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세상을 향해 닫히고 자신을 지키는 데 급급해졌다. 감사의 언어는 남아 있지만 감사의 삶은 희미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철저히 감사와 섬김의 삶이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 10:45)라는 말씀처럼 주님은 자신의 삶 전체를 이웃을 위한 헌신으로 드리셨다. 주님의 감사는 기적이나 축복의 순간에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만찬의 자리, 곧 십자가를 앞둔 그날에도 떡을 떼시며 ‘감사’하셨다. 그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감사는 형편이 좋아서 드리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신앙의 태도라는 사실이다.
오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 감사의 본질이다. 추수감사절을 한 달여 앞둔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감사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혹시 감사의 이유를 ‘내게 주신 것’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고 나눔의 자리에는 인색하지 않았는가. 감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시 세상 속에 돌려놓는 행위이며 그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감사의 계절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일, 농촌교회와 미자립교회를 기억하는 일, 재난과 고통의 현장에 손 내미는 일, 그것이 바로 ‘감사의 예배’이다. 교회의 감사가 예배당 안에서만 울려 퍼진다면 그것은 아직 절반의 감사에 불과하다. 예배당을 넘어 거리와 골목, 이웃의 삶 속으로 흘러가는 감사가 되어야 한다.
감사의 실천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가족 간의 화해,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 교회 내에서의 용서와 격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열매이다. 한 송이 꽃이 들판을 아름답게 하듯, 작은 섬김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가 다시 섬김으로 돌아갈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감사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려질 때 그 힘을 발휘한다. 감사가 신앙의 언어를 넘어 인생의 습관이 될 때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들판이 열매로 가득 차듯, 우리의 신앙도 감사와 섬김의 열매로 풍성해지길 바란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참된 공동체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