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한국교회와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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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종교개혁 508주년이라고 한다. 종교개혁 주일에 개신교가 어떻게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다. 우리 교회는 공식적으로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항에 입국한 1885년 4월 5일을 개신교의 시작으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가 개신교 선교 140주년이 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 인구는 조사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5-20% 정도라고 한다. 인구 5명당 한 명꼴이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의 경우에는 훨씬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2024년 현재 국회의원 중 약 29%가 개신교인이다. 과거 18대 국회에서는 개신교인의 비중이 40%에 달한 적도 있다. 정치인뿐 아니라 경영자, 법조인 등 고학력층의 개신교 신자의 비중도 비슷할 것으로 추산된다. 

불교가 17%, 가톨릭이 11%, 기타 종교와 무종교인이 50여%라고 하니 개신교는 우리나라 최대의 종교 집단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신라와 고려가 불교국이었고, 조선이 유교 국가였다면 근대 한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일본이 동도서기(東道西器)라 해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되 정신은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를 유지한 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기독교 정신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불교와 유교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 다르다. 동학과 천도교 등 민족종교가 나타났지만  결국 기독교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흐름에서 물러나고 만다. 

기독교는 선교 초기에 교리를 앞세우기보다는 병원과 학교 등 근대문물을 먼저 전파함으로써 한국인들에게 기독교야말로 근대문명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정신을 개조해야 사회가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동기가 된 것이다. 안창호와 이승만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의 학생이었던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국제정세에 눈을 뜨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 의회제도 등 서양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시야를 넓혀나갔다. 이승만은 수감생활 중에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신념을 굳혀가게 된다. 

1910년 개신교인은 약 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밖에 되지 않았지만, 기독교는 민족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 3·1 독립선언에 서명한 인물 33인 중 16명이 개신교인이었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헌장을 발표했는데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했였고, 1948년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이 조항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춘원 이광수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조항이 기독교에 의해 비롯되었음은 분명하다. 

이후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에서도 기독교는 주도적인 역할을 놓치지 않았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빈곤을 극복하고 자립, 자조, 자강의 정신을 불어넣은 것도 개신교였다. 순복음교회의 3중 구원론은 한때 기복신앙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가난을 극복하려는 힘든 시절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시대적 역할을 감당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유와 평등, 인권을 추구하는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뿌리도 역시 기독교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근대사가 기독교 정신으로 시작되었다면 현재 한국교회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한국교회를 새롭게 혁신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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