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고 서로 다름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밤낮없이 듣는 말씀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인데, 날로 양극화하는 이 땅에서 우리 크리스천의 자리는 어디인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고 높은 곳이다.
세상을 가장 쉽게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으로 나누는데 이것만으로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정리하기 어렵다. 적게 가지고도 만족하는 사람과 많이 가지고도 불만에 싸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다르게는, 현재의 조건이면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이대로는 안되고 모든 것을 바꾸고 고쳐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보수ㆍ진보, 좌ㆍ우의 이분법이 등장하고 사회는 복잡해졌다.
자유ㆍ민주ㆍ인권을 신봉하는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의 양극화 추세에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말고 국가사회의 중심을 잡으며 화합과 구원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본분이라 하겠는데 나라의 정치현상을 앞으로 하면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정립하는 것이 간단치 않다. 극한대립을 보이고 있는 양대 정당체제에서 각각의 구성원들 중에 상당 수의 크리스천이 포함되고 정부조직 내에도 기독교인의 비율은 적지 않은데 이들에게 기독교적 이상은 가슴에만 갇혀 있는지 의문이다.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하고 있다. 이는 물론 권력의 배분에서 종교에 따른 왜곡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천명한 것이지만 국가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종교의 영향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독교 정신은 국가사회의 정치 영역에서 적극적 역할을 요구한다. 우리 신앙의 중심에 그리고 기독교 문화와 윤리의 바탕에 이웃사랑의 개념이 있으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지상명령의 실천적 영역은 바로 국가사회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한시도 이 사명을 내려놓을 수 없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이념이 기독교의 정신과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을 위시한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 하에 사는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고난과 함께 부여하신 특별한 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내리신 사명이 몇 배나 쉬운 것임을 알고 소속한 각 분야에서 기회균등, 약자보호, 특권배제 같은 기독교적 정의를 실행하는데 종교적 열정으로 임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실제적 요구가 한가지 더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품격으로 관용의 향기를 이 나라의 정치문화에 실현하는 과제이다.
먼저 국회를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각 부문이 착실하게 성장해 국제사회가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유독 여의도 의사당 안팎에서 벌어지는 반지성적 행태는 참으로 남부끄럽다. 외국인은 물론이요 어린 학생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두렵다. 오직 수에 의한 세의 과시로 전통과 관례는 무시되고 선동과 거짓말이 난무하며 인격모독이 예사로 행해진다. 걸핏하면 색색 피켓을 만들어 들고 계단에 줄지어 서서 국민들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구호를 외친다. 제발 크리스천 의원들께서는 이런 집회에 나가지 말고 동료들을 말려 주시기 바란다.
단상에서 울리는 연설이 순교를 앞둔 스데반의 설교가 되어 기독인의 다름을 세상에 인식시키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엄숙한 사명이다. 저 높은 곳으로 오르자.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