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용비어천가’와 ‘불휘(뿌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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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창시절, 한 번쯤은 접할 수 있었던 《용비어천가》의 서두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의 원문을 현대어로 풀이한 글은 이렇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가 성하도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기에, 흘러서 내[川]가 되어 바다에 이르는 도다.” 《용비어천가》는 세종 임금께서 권제, 정인지, 안지,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현로, 성삼문, 이개, 신영손 등 10명의 신하들에게 짓게 한 국문시가(國文詩歌)로서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자의(字意)는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뜻으로서, ‘해동 육룡’이란 조선의 시조, 태조(太祖)의 고조부(高祖父)인 목조(穆祖)로부터 시작하여 증조부, 조부, 태조(太祖), 정조(正祖), 태종(太宗)에 이르는 여섯 대의 선조(先祖)를 뜻한다. 그러니까 《용비어천가》는 세종 임금께서 자신의 선조 여섯 분의 행적을 신하들에게 짓게 한 뜻깊은 노래요, 웅장한 서사시(敍事詩)이다. 《용비어천가》의 첫 단어 ‘불휘(뿌리)’를 떠올리면서 ‘견고한 삶의 뿌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학급 교실 칠판에 큰 글씨로 『뿌리』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학급의 아이들은 차례대로 한 아이씩 앞에 나가서 자기 가정의 ‘뿌리’ 곧 자기 조상에 대해서 준비해온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자랑스러운 듯이 이렇게 발표했다. “저는 전주이씨(全州李氏) 47대손(代孫)입니다. 저희 고조할아버지는 조선시대에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지내셨습니다. 지금의 외교부장관+교육부장관+문화체육관광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여성가족부장관+국가보훈부장관+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합친 직함입니다. 또 저희 할아버지는 지금도 시골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계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큰 무역 회사의 중역이십니다. 저는 저희 집안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가 준비해온 내용을 열심히 발표했는데 한 아이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담임 선생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아이는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자기 때문에 그 아이의 마음속에 상처가 되었으면 어쩌나 하고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는 앞으로 나와서는 조용한 어조로 이렇게 발표를 했다.

“저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저희 아버지에게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아주 많은 가족들이 있답니다. 특히 저희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신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선생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믿음’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잠시 겪는 슬픔이나 고난을 얼마든지 견디어 낼 수가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이 귀한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에 욥(Job)이라는 신실한 믿음의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부유했지만 ‘재물(財物)’이 그의 삶의 ‘뿌리’가 아니었다. 욥은 건강했지만 그의 건강도 그의 ‘뿌리’가 아니었다. 그는 10남매(아들 일곱과 세 명의 딸)를 두었다. 

그러나 그 자녀들도 그의 삶의 ‘뿌리’가 아니었다. 그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다. 그처럼 당당했던 그의 아내도 그의 삶의 ‘뿌리’가 아니었다. 욥에게는 그의 ‘믿음’이 그의 ‘삶의 뿌리’였다. 하나님이 그의 재물을 다 잘라내고, 그의 자녀도 다 잘라내고 그의 건강을 잘라냈어도 그의 믿음은 견고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믿음’이 그의 ‘삶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가문인가? 우리의 자녀인가? 우리의 지식인가? 우리의 재물인가? 우리의 명예인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인가? 엄밀히 말해서 ‘믿음’ 외에 그 어떤 것도 견고한 삶의 뿌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우리 자신의 삶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뿌리’가 좋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삶의 뿌리’를 지탱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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