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낙엽•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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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땅바닥이 온통 낙엽이다. 아파트단지 공간마다 높고 낮은 나무들에서 떨어진 누런 잎들이 뒤덮고 주변의 길에도 벚나무, 은행나무, 살구나무, 화살나무, 또 무슨 나무들의 낙엽이 바람에 몰리면서 모였다 흩어졌다 한다. 여기저기에서 등에 송풍기를 멘 사람들이 낙엽들을 관상수와 잔디에서 털고 인도에서 치우는 모터 소리가 요란하다. 땅에서 낙엽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서로 뒤섞여 무더기를 이룬다. 이런 모습을 보며 엉뚱한 연상을 가져본다. 

소망교회는 30년 전에 경기 광주시 실촌면 앵자봉 중턱에 수양관을 짓고 건물 정면 왼편에 단을 높여 ‘소망성도의 묘’를 조성했다. 검은 돌로 두 손을 모은 모양의 조각상을 세운 둘레로 열 평 남짓 자갈밭을 일구었다. 거기에 성도의 유골을 뿌리며 안장예배를 드린다. 화장을 마치고 한두 시간도 안되어 도착하기 때문에 유골에 온기가 남아있어 마치 고인의 체온처럼 느껴진다. 일부 납골당에 안치하는 가정도 있으나 교인 대다수는 소망성도의 묘에 함께 묻히기를 원한다. 생전에 시신기증을 희망해 사망 시 병원에 인도된 경우에도 유해는 결국 수양관 장지로 돌아오게 된다. 

한데 섞여 길가에 두텁게 쌓인 낙엽을 보며 수양관에 뿌려진 유골을 떠올리는 것은 언뜻 사자의 존엄을 잊은 무례가 아닐까 하다가 곧바로 다른 생각이 이를 물리친다. 구원받은 영혼이 하늘로 떠나간 뒤에 지상에 남은 자들이 간직하고자 하는 것은 육신의 잔해가 아니고 우리들 가슴에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지각이 들면서 느껴본 엄마의 따뜻한 품, 아빠의 훈육의 말씀, 형님, 누님과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주고받은 애틋한 마음,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학교, 직장 그리고 더 넓은 사회에서 맺은 인연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사건들은 수많은 사진들과 편지들에 담겨 남아있고 머리 속의 기억은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생생하다.

의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건강의식이 증진됨으로 수명이 늘어가는 것은 좋은 일인데 어쩔 수 없이 활동을 그친 생명의 기간이 길어지고 그 상당부분은 가족을 포함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이어지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나의 장수가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눈앞으로 툭 떨어져 내리는 낙엽처럼 인생의 결말이 간단히 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연수를 따라가는 시대가 언제 도래할지 알 수 없으나 지금 인류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질병을 이겨 수명을 연장하는 데서 나아가 낮은 출산율, 높은 결혼기피율을 다시 정상화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나무들의 튼튼한 줄기, 무성한 잎사귀, 화려한 꽃,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해마다 진행되는 성장과 결실의 과정을 반복해 따라하고 자연의 일부로 창조된 인간의 가치를 돌아본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미련없이 가지에서 떨어져 내려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으로부터 더 무겁고 두려운 가르침을 깨닫는다. 여름내 뜨거운 햇볕을 받아 탄소와 결합해 꽃과 열매를 키우고 소임을 다하고는 개체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일부는 거름이 되어 근원의 보존에 이바지한다. 요즘 지자체들이 겨우내 낙엽을 제자리에 두기도 하는데 그런 채로 자연스러운데 다른 무슨 뜻이 있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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