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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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숙종 27년) 5월 하순 교문 가운데 ‘금오(金吾)의 죄수가 80여 명으로 많아서 영어(囹圄)가 비좁아 한데서 거처하는 자가 많게는 1년, 2년에 이르러 기한이 없고, 우울(幽欝)한 기운이 위로 하늘의 화기(和氣)를 범해 재앙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환궁하던 길에 금오문(金吾門) 밖을 지날 때 친히 출두해 죄수를 걱정하고 막힌 것을 트게 해서 화합으로 이끄는 땅으로 하고자 본원으로 거행하도록 하고, 위 사단(社壇)에 나아갔다가 의금부 호두각(虎頭閣)에 들러 친문하고 (중략) 중한 자는 그대로 가두고 가벼운 자는 원배(遠配)하거나 혹은 도배(徒配)하여 옥으로부터 나가는 자가 45인이었다. 등등’이라고 하는 것에 의해 보더라도 설비가 협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도청옥은 좌우 양옥 모두 각 포도청이 구내에 병설되어 있었고 좌포도청은 종로의 동쪽 방향 파자교(把子橋) 동북에 있었고, 우포도청은 혜정교(惠政橋)에 있었다. 

옥사로는 다섯 칸 정도 면적의 감방과 이에 인접해 교형(絞刑) 집행장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옥(右獄)에 대해서는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원형의 돌담벽이었다고 하는 사람과 좌옥(左獄)과 같이 사각형의 돌담벽이었다고 하는 사람의 두 가지 설이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지금까지 이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옥사에 대해서는 전부 판자 바닥이었고 벽 안쪽은 사면은 판자벽, 바깥쪽은 흙벽이었다. 

또한 앞면에는 높은 창을 설치하고, 옥문은 판자문으로 했으며 이를 닫는 횡목(橫木)을 끼우고 그 위에 자물쇠를 채웠다고 하는 사실로부터 대체로 좌옥(左獄)과 같은 구조였던 것 같다. 

프랑스 선교사 리델(Felix Clair Ridel)의 <경성유수기(京城幽囚記)>에 따르면 교형장(絞刑場)도 역시 동일한 구조로 감방에 근접해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으며, 이점까지 좌옥(左獄)과 유사했다. 또한 위 유수기 중에 우옥(右獄)에서 독거방으로부터 혼거방으로 옮겨졌다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면 이 옥의 감방에는 독거방과 혼거방의 두 종류가 있었던 것 같으며 이 점만은 좌옥(左獄)과 달랐던 것 같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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